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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발·도착 승객에 안주, 변방 항공사로 전락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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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15년이 되면 외국 관광객을 다른나라에 뺏길 수 있다"고 경고하는 엄태훈 교수.

“국가간 항공자유화(오픈 스카이)가 확대되고 저비용항공사(LCC)가 늘어나면 5년 뒤 동북아 항공 시장은 지금의 두 배 규모가 될 거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크게 도울 기회다. 하지만 한국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세계항공교통학회(ATRS) 회장인 엄태훈(70)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UBC) 석좌교수는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3일 김포공항 컨벤션홀에서 열린 ‘김포공항 및 주변지역 발전토론회’에서다.

엄 교수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서 일하다 1972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UBC에서 경영학 석사(MBA)·박사학위를 받았다. 항공 인프라·정책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꼽힌다. 토론회 후 엄 교수를 따로 만났다.

 -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다. 중국은 2년 전 일본과 오픈 스카이에 사인했다. 2015년에는 중국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과 맺은 오픈 스카이가 발효된다. 수많은 아시아 LCC들이 중국 시장에 진입하고, 중국의 대형 항공사들이 동남아 노선에 취항할 거다. 반면 한국·중국의 오픈 스카이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 대신 싸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동남아·일본으로 여행 목적지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 어떻게 풀어야 하나.

 “중국과 오픈 스카이를 빨리 맺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장 가능성이 큰 방법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안건과 함께 의제로 올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현실적 타협(horse trade)을 해야 한다.”

 - 항공사들의 과제는.

 “한국의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아시아나는 서울 출발·도착 승객만으로 편하게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구태의연하게 있다간 2015년이 되면 (중국) 손님을 다 뺏긴다. 동북아의 변방 항공사(niche carrier)로 전락할 수도 있다. 에어아시아처럼 외국에 허브를 만들고 다국적항공사로 거듭나는, ‘파괴를 통한 창조(creative distruction)’를 해야 한다.”

 -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적극적으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당장 국내 시장을 다 개방할 순 없을 거다. 하지만 ‘5년 뒤에는 다 연다. 그 안에 정신차려 (경쟁을) 준비하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항공사들을 자극해,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 국내 공항 정책은.

 “인천공항은 장거리 노선, 대형 항공사 중심의 허브공항으로, 도심에 있는 김포공항은 단거리 직항노선을 운항하는 LCC 공항으로 역할 분담을 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 김포공항이 다시 커지면 인천공항 허브화를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천공항 허브화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김포공항 국제선 취항을 규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이다. 허브공항의 핵심은 환승에 있다. 환승을 안 하는 LCC가 들어가는 것은 허브공항과 관계가 없다. 미국은 한 도시에 복수의 공항이 있으면 한 곳은 대형 항공사, 다른 한 곳은 LCC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렇게 공항은 공항끼리, 항공사는 항공사끼리 차별화하고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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