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④ 미학의 발견 - 진중권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3.09.03 00:26

업데이트 2013.09.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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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진중권 교수는 “재미있고 가치 있게 살면 된다. 사회학적 기준으로 우리는 서민이지만, 삶의 태도는 귀족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걸 ‘서민적 귀족’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진중권(50·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논객이다. 사회적 쟁점마다 쏟아내는 그의 ‘독설’에 대해 누구는 “통쾌하다”고 박수를 치고, 누구는 “경솔하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그가 트위터·블로그에서 한마디 촌평을 남기면 숱한 찬반 댓글이 붙는다. 그만큼 주변의 칭찬과 공격에 노출된 인물도 없다.

 그런 진 교수는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바로잡을까. 미학을 전공한 그에게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읽어가는 일종의 ‘진중권식 독법(讀法)’이었다. 그 독법 너머로 행복을 향하는 오솔길이 설핏설핏 보였다. 바로 직문직답에 들어갔다.

 -논객 이전에 미학자다. 예술의 기능이 뭔가.

 “원래는 주술이었다.”

 -무엇을 위한 주술인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담는 거다. 그러니까 이상을 담는 거다. 구석기 시대의 여성상을 보라.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크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걸 보며 자식을 더 많이 낳고, 사냥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봤다. 벽화는 가상인데, 그게 현실을 낳는다고 믿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술을 통해 미리 보는 거다. 오늘날 예술도 마찬가지다.”

 - 그런 예술이 인간의 아픔도 치유하나.

 이 물음에 진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다. “기억난다. 아버지의 성경책 앞에는 시가 하나 적혀 있었다. ‘나는 이걸 바랐는데 안됐다. 나는 저걸 바랐는데 안됐다.’ 계속 그런 식으로 가다가 마지막에는 ‘나중에 깨닫고 보니 신이 그 모든 걸 내게 주셨더라’는 시였다. 그리고 아래에 ‘전사한 어느 미군 병사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쪽지’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그는 인천 월미도에 갔다. 바닷가의 한 카페에 들렀다. “책꽂이에 시집들이 꽂혀 있더라. 그 중 아무거나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펼쳤는데 그 시가 딱 나오는 거다. 무명 시인이 쓴 그 시의 제목은 ‘나는 부탁했다’였다. 아, 그때는 나도 힐링이 되더라. 아주 이상한 우연에 의해서 전율이 오더라. 대중이 예술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우리는 왜 예술을 좋아하나.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도, 성격도 불완전하다. 수시로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절망한다. 이런 것들이 다 상처로 남는다. 예술이 종종 돌파구가 된다.”

 -예를 들자면.

 “지난 대선 때 절반은 환호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절망했다. 그때 그들을 치유했던 게 ‘레미제라블’이란 영화였다. 그걸 본 사람들이 상당히 힐링이 됐다고 말하더라. 그런 거다.”

 -영화가 왜 그들을 치유했나.

 “예술은 굉장히 자유롭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며 거기에 담긴 자유를 동경하고 갈망한다. 지금은 허락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허락될 자유를 미리 맛보는 거다. 그것 자체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

 - 그렇게 당신 삶을 치유했던 작품을 꼽는다면.

 “괴테의 ‘파우스트’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던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오~삶아. 너는 너무도 아름답도다. 멈추어라.’ 나는 그 순간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나도 그런 구원을 기다린다. ‘내가 살았던 삶이 참 아름답구나’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건 기성 종교에서 말하는 신에 의한 구원과 다르다.”

 지금껏 미학에는 ‘상처’라는 말이 없었다. 상처와 치유는 미학에서 최신의 담론이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주로 ‘해방’을 말했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많은 지식인들은 ‘상처’를 말하고 있다.

 진 교수는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사회주의가 오고, 공산주의가 오고, 해방된 세상이 와도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고(苦)다.”

 그는 상처를 두 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상처는 사회적 처방으로 극복해야 한다. 가령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차별, 동성애자 차별, 이주 노동자 문제, 아파트도 임대아파트냐, 아니냐. 그런데서 받는 아이들의 상처. 그런 건 사회적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날 때부터 고독한 존재라는 개인적 상처는 어쩔 건가. 이걸 푸는 데는 예술과 철학이 도움이 된다.”

 -예술을 통해 어떤 상처를 풀었나.

 “나는 자랄 때 정말 많은 실수를 했다. 대인관계도 굉장히 힘들어 했다. 사적인 만남에서 대화가 끊겼을 때의 침묵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지금 이렇게 말하면 웃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라는 거다. 논쟁하고, 나가서 싸우고 하는 건 사실 나의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외적 인격)다. 실제로는 내성적이다. 생각도 내가 좀 삐딱하지 않나. 그래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나’란 생각도 많이 했다. 그때 ‘파우스트’에서 읽은 구절이 나를 치유했다.”

 -어떤 구절인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게 마련이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란 글귀다. 그걸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실수를 많이 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그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실수하는 건 내가 노력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자.’ 그건 마주침의 순간이었다. 소설과 나의 고통이 마주치는 그런 순간이었다. 예술을 통한 치유는 늘 그런 ‘마주침의 순간’에 일어난다.”

 진 교수는 “내 삶의 모토(신조)”라며 세 가지를 꼽았다. 정신(이성)과 유희(예술·놀이), 그리고 구원이다. 그는 “삶 자체를 ‘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삶을 놀이로 보면 어떤 장점이 있나.

 “적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바둑을 둔다고 바둑 상대를 미워하진 않는다. 내가 저 사람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이라 해도 인생이라는 게임 상대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럼 잔혹함이 덜어진다. 변모씨가 계속 나를 걸지만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 그도 바둑 상대인가.

 “(웃으며)바둑을 두다가 판을 엎어버린 사람이다. 요즘도 고소를 할까 말까 고민이다. 그런데 고소를 해서 상대가 괴롭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 갖고 내가 왜 행복하냐는 거다.”

 -놀이의 코드로 삶을 꾸려가면 면역력도 생기나.

 “물론이다. 인터넷 들어가면 엄청나게 욕을 먹는 게 나다. 내 블로그에 욕하는 쪽글이 수천 개 붙을 때도 있다. 그럼 나는 ‘자아, 형이 불판 갈아줄게. 더 욕 해봐’라며 페이지를 바꿔준다. 그럼 또 수천 개의 욕하는 글이 붙는다.”

 - 그런 글 보며 상처받지 않나.

 “나는 안 받는다. 전혀 안 받는다. 왜냐면 코드가 다르다. 나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되든, 민주당이 되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신자유주의, 한미FTA, 어차피 둘 다 합의한 거다. 물론 다른 게 있고 중요하다. 그러나 삶도 정치도 게임의 요소가 강하다. 뭐하러 목숨까지 거느냐는 거다. ‘넌 나쁜 놈이야’하는 도덕적 코드보다 ‘넌 웃기는 놈이야’하는 미학적 코드로 가자는 거다. 삶을 놀이로, 유희로, 예술로 보자는 거다. 각자의 삶이 거대한 예술작품이니까.”

 -다들 삶의 위너(승자)가 되길 원한다.

 “잘 생각해야 한다. 누가 진짜 인생의 위너일까. 주위를 보면 다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낀다.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대학 나온 사람에게 루저(패자)다.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에, 수도권 대학은 명문대에, 명문대는 유학파에 루저다. 유학파는 또 아이비 리그 졸업자에 루저다. 그렇게 보면 모두가 다 루저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

 “한 끼 10만 원짜리 식사라도 연속으로 먹어봐라. 질린다. 그때는 분식집 라면이 맛있다. 1000만 원, 2000만 원짜리 와인도 처음 한두 번은 좋을 거다. 그런데 매일 먹으면 질린다. 차라리 막걸리가 맛있어 진다. 그런 거다. 행복해 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설정해 놓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내게 이미 있는 걸 통해서 찾으면 쉽다. 나는 어제 동태전하고 막걸리하고 술국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더라. 그런 거다.”

 - 그럼 누가 삶의 위너인가.

 “자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 핵심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거다. 그럼 위너가 된다. 왜? 그럼 행복해지니까. 누가 삶의 위너인가. 결국 행복한 사람이 삶의 위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진중권 교수=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중앙대 독어독문과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생각의 지도』『미학오디세이』『앙겔루스 노부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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