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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게만 세금 걷어선 복지재정 감당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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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민주당은 법인세·소득세를 올려서 가진 자한테 더 걷자고 하는데, 이 정신은 참여정부 때 내려온 거 아닌가요?”

▶김병준 국민대 교수=“유럽의 조세부담률은 35%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19.5%예요. 중산층 이상에게 (세금을) 다 걷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복지가 되지 못해요.”

조세정책, 정권 명운 걸고 하는 것

 복지와 증세 논란에 대한 김병준 교수의 진단은 정치권 시각에선 ‘파격적’이었다. 민주당은 현재 ‘부자 증세’를 복지 재원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산층의 지갑에 손을 대는 대신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내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29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초청받아 특강한 김병준 교수는 “어떤 경우에도 부자에게만 세금을 걷어선 복지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부자도 세금을 적게 내지만 중산층도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교수는 당시 주요 정책을 입안·조율했던 친노 핵심이었다.

 김 교수는 정부의 조세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세금은 정정당당하게 걷어야 하는데, 국민이 못 느끼게 살짝 뽑아낸다? 이건 아니다”라며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의 ‘거위털 뽑기’ 발언을 비판했다. 조 수석은 지난 9일 정부의 세제개편안 원안에 대해 “마치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 게 이번 세법 개정안의 정신”이라고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에 따라 수정된 세제개편안에 대해 김 교수는 “조세정책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하는 것인데, 어떻게 대통령의 의지조차 확고하지 못한 조세개혁이 나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복지공약 이행과 그에 따른 증세 논란에 휩싸인 정치권을 향해 “국민에게 “참아주시고 양보해 주십시오”라고 할 정도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며 “복지를 하려면 돈을 더 걷어야 하는데, 무조건 주겠다는 약속만 가지고선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야 모두에게 쓴소리도 했다. ‘우리 정치의 비상식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혁신 방안’이라는 주제로 한 특강에서 그는 “정치 지도자는 국민에게 자꾸 뭘 해주겠다며 따라가는 ‘팔로잉(following) 정치’를 하지 말고 앞서 가는, 리딩(leading)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양보 요구하는 리더십 필요

 김 교수는 “우리 정치권엔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다”며 14세기 페스트(흑사병)가 휩쓸고 지나간 유럽을 예로 들었다. 그는 “흑사병 의 원인은 쥐벼룩, 박테리아가 아니라 비위생적인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던 국가 행정체계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페스트가 유대인 때문이라며 수천 명의 유대인을 산 채로 화장했다”고 운을 뗐다.

대기업만 탓하는 선동정치 문제

그러면서 “(정치권이) 투자가 안 되면 좌파정부 때문이라고 하고,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구조도 굉장히 복잡한데도 대기업의 탐욕 때문이라며 선동한다”고 지적했다. “분노의 정치, 부정의 정치 속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지식은 무용지식”이란 말도 했다.

 그는 “새로운 인력을 영입하고, 신당을 만들면 새 정치인가?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게 과연 새 정치인가?”라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겨냥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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