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경색됐던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 주효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비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틀에서 벗어나 ‘성숙한 남북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같은 의견은 지난 27일 대북정책 싱크탱크인 한반도포럼(회장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이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주최한 ‘남북 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나왔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지만 평화 프로세스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7·4 공동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 10·4 선언 등을 잘 엮으면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일연구원 박영호 선임연구위원은 “‘지속가능한 평화’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외교원 전봉근 교수는 “‘평화’라는 표현은 일부 국민과 전문가 사이에서 반감을 사는 만큼 새로운 용어 개발을 통해 평화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연구원 최진욱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했을 때 ‘당국 간 대화’를 제기한 것이나 쉬운 대북정책 용어로 국민을 설득하는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남북 관계가 못 보면 안달 나는 ‘신혼’이나 ‘파경’으로 치닫는 극한대결에서 벗어나 원숙한 ‘중년기’로 발전돼야 한다”고 부부 관계를 빗댄 주장을 펴 눈길을 끌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을 신혼기라면 이명박정부 때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갈등을 이겨내고 중년기에 이른 부부가 상호존중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양상이 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날 세미나에선 ‘통일’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경희대 권만학 교수가 “목표로서의 통일은 지양돼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 세미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권 교수는 “지금은 남북 관계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흡수통일론은 북한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일방적인 대북(對北) 화해 추구는 남한 내 보수층의 반발을 사 효과가 없을 것이 자명하니 남북한이 공존하는 ‘평화’를 제3의 길로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북핵불용 및 재래식 무기 감축 ▶정전체제의 평화협정 체제 전환 등을 평화공존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평화를 위해 통일을 얘기하지 말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상 평화를 위해서도 통일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과 관련, 김 교수는 “‘안보’와 ‘교류협력’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고윤희 소장은 “이제는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남북 대화축’에서 열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6자회담과는 별도로 남북 대화 상설기구가 마련되면 우리가 북·미 대화의 중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과거 남북 합의문은 시대적 변화와 법적 제약성 등으로 한계를 드러낸 만큼 새로운 남북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북한에 굴욕감을 주는 언론 보도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정영교 연구원
사진=김상선 기자
◆한반도포럼=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대전환기를 맞아 한반도 안정과 평화, 통일에 대한 대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싱크탱크다. 북한과 동북아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 30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했고 지난해 3월 출범했다. 통일과 평화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보수·진보의 다양한 학문적·정책적 해법과 대안을 모색한다. 열린 보수를 지향하는 중앙일보는 한반도포럼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 관련된 국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