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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주말 별장 '다차' 서 샤슬릭에 보드카 한 잔 … 한 달이 후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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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다차 소유는 제정 러시아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꿈이다. 사진은 모스크바 근교의 최신식 다차들 [레지온 미디어]

지난 23일. 금요일 오후 모스크바 시내.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시외로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문다. 어둠이 깃들면 한국에선 ‘불금’의 열기가 피어오르지만 이곳은 다르다. 레스토랑과 클럽에서 퍼져나오는 유혹의 네온사인, 박물관과 극장을 뒤로하며 모스크바는 다차 행렬에 잠긴다. 차 속엔 탈출에 안달이 난 도시인이 타고 있다. 두세 시간, 아니 네 시간만 참으면 자연에 몸을 던질 수 있다. 다차로!

150년 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로자 라스콜니코프의 병약한 정신을 압박하던 페테르부르크의 지독한 여름. 러시아 대도시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 여름처럼 여전히 탈진 상태가 된다. 그들은 다차로 달아났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가난한 가장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긴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다. 시대는 달라져도 다차 피서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에도 주말 농장이나 주중 틈틈이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한 달 넘는 여름휴가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두 번째 집 다차는 러시아에만 있는 문화다. 다차는 러시아어로 ‘주다’라는 뜻의 동사 ‘다바티’에서 파생됐다. 18세기 황제가 신하들에게 수여하던 농노가 딸린 토지, 즉 ‘봉토(封土)’를 지칭하던 말이다.

옛 소련도 국민에게 토지를 지급했다. 하지만 겨우 600㎥(약 180평)인 ‘코딱지만 한’ 땅. 그래서 흔히 ‘셰스티 소토크’ 즉 ‘백(百)이 여섯’이라고 비꼬았다. 그래도 받으면 행운아였다. 그곳에 작은 다차를 만들고 남은 땅에는 텃밭을 일궜다. ‘행운아’라고 한 이유는 무상으로 주지만 누구나 받는 게 아니었고, 오래 기다려야 했으며 공헌도 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땅 크기도 달랐기 때문이다. 땅을 받으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다차 모양을 설계하고, 재료를 사서 여름 내내 다차 건설에 구슬땀을 흘린다. 대충 지으면 다음 차례는 내부 꾸미기다. 그러는 틈틈이 텃밭도 일군다. 그런 데 시간이 몽땅 들어간다. 드디어 다 짓고 나면 행복이 나타난다. 가까운 숲에서 열매와 버섯을 따고 냇가에서 미역을 감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샤슬릭(꼬치구이)을 구워 먹는 여유, 그것이 다차의 행복이다.

현대 러시아인은 이런 ‘다차 문화’를 ‘다차 열풍’으로 발전시켰다. 남녀노소, 도농, 빈부를 불문하고 다차에 목을 맨다.

다차는 해방구다. 심지어 휴대전화도 잘 안 되는 곳이 숱해서 일에서 해방되고 제대로 쉴 수 있다. 국가가 개인에게 사는 방법을 미주알고주알 강요하던 옛 소련 시절에도 다차는 은신처, ‘내적 망명(나랏일에 무심하고 사생활에 몰두하는 상태)’을 위한 작은 섬 역할을 했다. 현대 러시아는 자유롭고 분방해졌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든 문제를 피해’ 다차를 찾는다.

작가 알레그 프로타소프는 “이런 현상은 러시아가 태고적부터 농경국가였기 때문일 수 있다. 도시화·산업화·집단화로 많은 사람이 친근한 토지에서 강제로 분리됐기 때문에 다시 땅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열풍은 통계에도 나타난다. 러시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의 48%가 교외에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 다차를 지었다. 또 대부분은 여름휴가용으로 활용한다. ‘다치니키(다차에서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는 텃밭에서 일도 하지만 대부분은 푹 쉬면서 거의 무위도식한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대개 여름에 해외여행을 떠날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다차를 선호한다. 브치옴에 따르면 2013년 대부분의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는 휴가를 집 가까운 다차에서 보냈다. 한 달 휴가 내내 머문 경우는 31%, 주중엔 시내를 오가다 주말엔 다차를 찾는 경우가 31%였다. 62%가 다차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신세대도 ‘다차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모스크바의 엔지니어인 바실리(30)는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다차 부지를 샀다. 새 차를 살지 다차를 지을지 고민했지만 애가 어릴 때는 먼 데를 못 가니까 모스크바 40㎞ 안에 다차를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텃밭 대신 그네·모래판·철봉 같은 아이 놀이터를 만들었다. 아이가 친구와 노는 옆에서 그는 친구들과 샤슬릭을 굽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신흥 부자’들은 보안시설이 완비된 다차촌에 호화주택을 짓는다.

다차에서 휴식하며 텃밭을 가꾸는 여성

러시아 전역에는 또 옛 소련 시절 조성된 ‘동일직업군’ 다차촌들이 남아 있다. 흐루쇼프의 ‘해빙’기에 받은 600㎡ 부지는 대개 직장과 연계된 다차 조합을 통해서 할당됐다. 그 결과 작가촌, 광부촌, 화가촌, 건설노동자촌, 수력기술자촌처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직업별 다차촌이 양산됐다.

이런 다차촌들엔 ‘동료의식’이 남아 있다. 직장 스트레스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긴 했지만 그래도 다차에선 더 편하게 ‘전문직 동료’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모스크바 작가촌’에 다차가 있는 겐나디는 거기서 1980년부터 살았다. 그때 모스크바 작가단체가 다차 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겐다니는 마을 가장자리, 숲의 공터가 시작되는 곳에 다차를 만들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을 때 다차를 찾는다.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 글도 잘 써진다”고 말했다.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겐나디에 따르면 사교성이 좋은 작가들은 생일 같은 핑계 거리만 있으면 모여서 보드카를 진탕 마신다. 그럼에도 장점은 있다. 겐나디는 “도시의 빡빡한 생활에선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잔하다 보면 저절로 나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일의 상당 부분이 다차에서 결정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차에서의 수다’를 소재로 희곡도 썼다. 그는 “러시아 문학을 들여다보면 내가 처음은 아니고 다차를 소재로 쓰지 않은 작가는 없을 정도”라며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엘레나 김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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