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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흑산도서 만난 실학 학문이 설 곳은 삶의 현장이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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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월은 멀었지만 거리는 가까웠다. 반계 유형원(1622~1673), 성호 이익(1681~1763), 손암 정약전(1758~1816),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한 조선 실학자들의 자취 말이다. 지난주 다산연구소와 실학박물관이 주최하는 ‘실학기행 2013’에 함께하며 그분들의 자취를 찾아 경기도와 전남·북을 사흘간 돌았다. 우선 남양주와 안산의 다산과 성호 묘소를 각각 참배하고 부안의 반계서당을 찾았다. 이어 흑산도 손암 유배지를 찾고 다산이 귀양살이를 했던 강진 사의재와 다산초당을 거쳐 그의 외가인 해남 윤선도 고택 녹우당까지 돌아보는 강행군이었다.

 말과 글 속에서나 만났던 실학자들의 자취를 직접 찾아보니 그분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지금 우리가 머무르는 바로 이 땅이라는 공통분모 앞에 수백 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은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아득한 옛날 분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곁에 계셨던 살가운 어른들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삶과 생각, 저술에 대한 관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현지 답사와 기행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현장 방문은 공허한 명분론·이상론이라는 허학(虛學)을 극복하고 삶의 현장에서 백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추구했던 실학(實學)의 이상과도 서로 통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무심한 현실도 함께 느껴졌다. 반계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학 고전 『반계수록』을 저술했던 반계서당에서 특히 그랬다. 건물은 깔끔했지만 마루는 온통 들짐승 배설물로 넘쳤다. 반계가 마셨을 우물에 고인 물은 상하다 못해 ‘녹차 라테’로 변해 있었다. 조선의 과학 명저 『자산어보』의 산실인 흑산도의 손암 유배지는 멀리선 언뜻 초가로 보였지만 다가가서 보니 누런 페인트를 칠한 시멘트로 지붕을 덮고 있었다. 실상을 확인했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행을 인솔한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참담하다”며 연방 혀를 찼다.

 마침 교육부가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하는 대입 방안을 27일 발표했다. 앞으로 암기식이 아닌 제대로 된 한국사 교육을 하려면 학생들이 과제 연구도 하고 현장도 직접 찾아야 할 듯싶다. 한국사 교육을 필수로 하는 걸 계기로 문화재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대대적인 역사 유적 정비 작업을 하는 건 어떨까. 조상의 흔적을 찾아 나설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주려면 어른들이 그 정도 정성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우선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것은 행동과 일로써 이를 실천한 후에야 비로소 그 본뜻을 찾을 수 있다”(정약용 지음, 박석무 옮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라는 다산의 말부터 가슴에 새기고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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