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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정부 있었다" 횡령 굴레 벗기 자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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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뇌물 수수 등의 혐의를 받는 보시라이(맨 왼쪽) 전 충칭시 당서기가 24일 산둥성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왕리쥔(맨 오른쪽)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증언을 듣고 있다. [지난 AP=뉴시스]

“난 정부(情婦)가 있었다.”

 뇌물 수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자폭성 발언이다. 횡령 혐의를 벗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속개된 24일 재판에서 보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는 “보시라이가 랴오닝(遼寧) 성장이던 2002년 아들과 함께 영국에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웠고 이런 사실을 안 보가 공금 500만 위안(약 9억1000만원)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보는 구와 아들 보과과(薄瓜瓜)가 유학을 간 배경부터 설명했다. “당시 난 정부가 있었다. 이를 안 구가 홧김에 상의도 없이 중학생이던 과과를 데리고 영국에 가버렸다.”

 이어 보는 “구는 내 앞에서 울거나 징징댄 적이 없는 여장부다. 더구나 구는 당시 5개의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개인 재산만 3000만 위안(약 54억5000만원)에 달했다. 또 구는 보과과 성적이 매우 우수해 장학금을 받았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그들의 지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500만 위안의 공금을 영국으로 보냈다는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보시라이의 자신감이다. 특히 중국 형법의 경우 공직자의 축첩이나 외도를 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무죄 주장을 위해 도덕적 타격은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의 실각 뒤 일부 중화권 언론은 다롄(大連) 시장 시절 다롄TV의 한 여성 아나운서가 정부였다고 보도했었다. 이후 그는 구에게 납치돼 살해됐으며 그 시신이 인체실험실에 전시돼 있다는 괴담 수준의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유명 배우인 장쯔이(章子怡)가 보에게 10차례 성접대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장이 해당 언론사를 고소하며 보도 내용을 강력 부인했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보의 충복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나와 보와 설전을 벌였다. 보는 혐의 내용 대부분을 부인했다. 왕은 “보에게 독살사건의 진상을 보고하고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하자 보가 물컵을 집어 던지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보에게 따귀를 맞아 코피가 흐를 정도였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보는 “왕이 구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했을 뿐 사건에 관한 보고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왕의 해임을 둘러싸고도 둘은 맞붙었다. 보는 “왕이 폭력조직과의 전쟁을 벌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스스로 다른 자리로 이동을 원했다”고 주장했고 왕은 “일방적으로 해임됐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왕은 2008년 보시라이에 의해 충칭시 공안국장으로 발탁돼 폭력과의 전쟁을 이끌며 ‘치안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구카이라이 사건 처리를 놓고 보와 갈등하다 지난해 2월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망명을 기도해 보의 실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편 나흘째 계속된 25일 재판에서 검찰은 보의 직권남용과 관련된 황치판(黃奇帆) 충칭시장의 증언기록을 제시하고 심문을 벌였다. 황 시장은 보가 공안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왕을 직위해제했다고 증언했다. 황 시장은 보의 지시로 병력과 장갑차를 이끌고 가 왕이 피신한 미 영사관을 포위했던 인물이다. 재판부는 이날 오전 11시12분(현지시간) 재판을 서둘러 끝내고 26일 오전 속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은 보의 최후 변론이 예정돼 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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