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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 감사원장 힘들게 유임 → MB측 "배신자" → 내부 불화 … 논란 끝 하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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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왼쪽)이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양건 감사원장 사퇴의 진실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용진 대변인. [김경빈 기자]

양건 감사원장이 전격 사퇴하기 전이던 이달 초 그와 박근혜정부 들어 임명된 감사원 고위간부와의 갈등설이 관가에 파다했다. 지난달 10일 감사원의 4대 강 감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두 사람이 충돌했다는 내용이다. 당초 감사원은 4대 강 담합 비리에 중점을 두고 감사를 시작했으나 결과는 “4대 강 사업은 대운하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나와 파장이 일었다.

 당시 4대 강 담합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자료를 제출한 국토부 사무관이 췌장암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에 감사원은 해당 사무관의 책상 서류까지 직접 회수했고 거기서 4대 강 사업 과정에서의 청와대 지시 내용 등이 나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발표 내용을 놓고 양 원장과 고위간부 간에 갈등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 핵심 관계자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감사 결과를 담합 사실에만 국한하려던 양 원장의 생각과 달리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이 나오자 양 원장이 사실을 덮을 수도 없어 몹시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해당 간부는 “(갈등설은) 사실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양 원장이 감사원에서 어떤 입지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선 “감사원장이 리더십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양 원장은 유임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정권 초 여권 내부에선 양 원장이 스스로 물러나주기를 바라는 기류가 강했다. 감사원의 업무특성상 자신을 임명했던 정부의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칠 수밖에 없는데, 헌법상 임기(4년)를 명분으로 양 원장은 물러나지 않았고, 정부 출범을 전후해 인사 사고를 겪은 청와대는 그를 유임했다.

 양 원장 유임 이후 감사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지적해 온 문제인 ‘복지 전달 체계’ 등에 대한 점검 결과를 내놨다. 또 4대 강 사업 발표 외에 그는 이명박정부의 대표 사업인 서민금융 사업, ‘영부인 사업’으로 불렸던 한식 세계화 사업 등에 대한 감사결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양 원장 재임 시 코드감사 논란이 증폭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 원장을 임명했던 이명박계에서 그는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특히 2011년 감사결과 발표에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던 4대 강 감사결과가 정권이 바뀐 후 “총체적 부실”(지난 1월)로, “4대 강 사업=대운하”(지난달 10일)로 결론이 나자 이명박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그에게 사임을 촉구했다.

 그렇다고 여권 내 다른 그룹들과 원만했던 것도 아니었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에게 ‘수시 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감사내용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감사결과를 문서로 보고하는 것이다.

 양 원장 전임 감사원장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런 수시보고를 했다. 그런데 양 원장의 경우는 거의 하지 못했다는 게 감사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두 차례 수시보고한 게 고작이었다”며 “(청와대와) 소통이 거의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감사원장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균형성을 잘 갖추는 게 중요한데 그러지 못한 게 불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 내부 갈등에 청와대와의 소통 부재, 이명박계의 반발 등으로 고립무원(孤立無援·고립돼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의 상황에 처해 있던 양 원장의 사퇴 소식에 여권에선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청와대는 양 원장의 사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 나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의 장훈 중앙대 교수를 청와대가 감사위원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를 양 원장이 반대했다는 ‘인사 갈등설’에 대해선 불쾌해하는 기류다. 과거 양 원장이 제청한 감사위원 중에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지냈던 진영곤 위원과 역시 이명박정부 인수위원회 출신인 김인철 전 위원이 있었다. 이제 와서 장 교수가 인수위원회 출신이기 때문에 제청을 거부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는 얘기다. 궁지에 몰린 양 원장 측이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인사 문제를 핑계로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것이다.

 양 원장은 지난 24일 공관에서 짐을 정리했다. 26일 퇴임식에는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글=허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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