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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한 산문시의 매력 … 시가 훨씬 자유롭게 다가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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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인 최정례는 “시가 없다면 다른 세계가, 꿈이 없는 거다. 이 딱딱하고 건조한 현실만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겠느냐”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최정례(58)는 요즘 실험 중이다. 본격적으로 산문시 쓰기에 나섰다. 2013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상당수가 산문시다. 그 조짐은 2011년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에서 이미 엿보였다.

 예심위원인 권혁웅 시인은 “시에서 연상이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하면서, 수다 속에 다른 국면이 슬그머니 들어온다. 잘못하면 작위적일 수 있는데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스스로 진화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최 시인은 “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시집을 번역하면서 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게 됐죠. 산문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자유로워졌어요. 다음 시집은 완전히 산문시로 쓰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변화는 말과 말이 부딪치는 지점에서 시작됐다. 계기는 2006년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다른 나라 작가들에게 자신의 시를 소개하려고 번역하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2011년 번역 시선집 『 Instances』도 냈다.

 “번역을 하면서 내 말이 확장됐어요. 뭐가 이렇게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시가 달라지고, 나도 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 다른 말을 쓴다는 건 다른 사람이 되는 거에요.”

 하지만 모국어를 다루는 시인의 입장에서 외국어는 불편한 옷이었다. 그의 시 ‘우주로 가버리는 단어들’에서 ‘외국어로 말할 때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먼저 떠오른 단어를 쫓아 말하게 된다. 그러니까 쉽게 튀어나온 단어를 따라 내가 끌려 다니는 꼴이다’라고 읊었듯.

 “말은 권력이에요. 거기서는 어린 아이도 심지어 거지도 영어를 잘하잖아요. 나는 말도 못하고 더듬더듬해서 IQ(지능지수)가 50도 안 돼 보이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외국어 장벽 앞에 좌절을 경험했던 시인은 ‘시어’라는 또 다른 말 앞에서 쩔쩔매는 독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가 어려운 건 예상하는 대답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처음 가는 길에, 처음 보는 지도를 보고 독법도 틀렸기 때문에 헤매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죠.”

 시인이 늘 예상을 벗어나는 답을 제시하는 이유를 말하며 그는 ‘산문은 직진, 시는 돌아가는 것’이라는 문학평론가 조재룡의 말을 인용했다.

 “시의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절대로 해서는 안 돼요. 어떤 프레임에 가두거나 뒤집어서 연결하거나 건너뛰거나, 여러 이야기를 섞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그의 시에는 뒤섞인 시간 때문에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뒤죽박죽 된 꿈을 꾼 것처럼.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지금 생각, 과거 생각, 미래 생각이라고 구분해서 하지 않아요. 머릿속에서는 무리 없이 섞이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시로 말하는 거에요. 초현실 같은 순간, 꿈과 같은 순간이 시적인 순간이에요. 잠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이 세계를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거죠. 시는 다른 세계로 가는 다리에요.”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정례=1955년 경기 화성 출생. 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등. 이수문학상·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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