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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프리마돈나 고난도 가창력 탓에 37년간 무대 못 올린 '라 트라비아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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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

현실로 돌아온 비올레타는 복잡한 사랑 따위는 잊어버리고 예전처럼 즐겁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며 카발레타 ‘언제나 자유롭게’를 부른다.

“쾌락만이 최고야. 파리라 불리는 사막에서 오로지 쾌락만을 쫓으며 즐겁게 살리.” 사랑을 외면하는 그녀의 노래에 이어 두 차례에 걸쳐 밖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알프레도의 노래는 계속해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비올레타는 혼란 속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며 제 1막이 끝난다.

갈등에 쌓인 감정과 교차되는 이 부분의 음악은 프리마돈나(prima donna·오페라의 주역을 맡은 여가수를 이르는 이탈리아어)의 가창력과 연기가 함께 요구되는 난이도 때문에 라 스칼라 극장이 마리아 칼라스 이후 37년간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동기가 됐고 통상적으로 제3막에 가서야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당시에는 제1막의 후반 즉 비올레타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에서부터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알프레도의 카바티나로 시작되는 제2막의 배경은 제1막보다 3개월이 지난 겨울, 파리 교외의 자그마한 시골집으로 파리 생활을 청산한 비올레타와 함께 한 3개월간의 꿈 같은 생활을 찬미하는 대목이다.

‘카바티나 그녀 없이는 행복도 없네’는 “그녀와의 3개월, 그녀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렸다네. 그녀와 사는 이곳은 낙원이라네.”라고 노래하나 이때 등장하는 하녀가 보여주는 것은 적자 투성이의 가계부다. 지난 3개월간의 안락한 생활이 비올레타의 마차와 가구 등을 판 돈으로 마련한 것임을 알게 된 알프레도가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격정적인 카발레타 ‘나의 비겁함이여’를 부르는데 이 곡 또한 난이도가 너무 높아 테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공연에서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카바티나와 카발레타라는 대조되는 두 노래 양식을 통해 주인공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상태와 더불어 주역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감정 풍부한 베이스 아리아들에 귀 기울이는 것 또한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하는 묘미다.

마침내 두 사람이 사는 집을 찾아온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알프레도의 누이동생의 혼사에 방해가 된다.”며 이별을 요구하고 결국 이별을 선택한 비올레타는 죽음을 앞두고 하녀에게 자신에게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고는 얼마 되지 않는 돈 중의 절반을 축제기간을 어렵게 보내는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라며 내보낸다.

얼핏 흘려 보내기 쉬운 이 장면을 보면서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비올레타는 죽음 직전에 그녀를 다시 찾은 알프레도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건네주며 이렇게 유언한다.

“당신을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의 초상입니다. 앞으로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녀와 결혼하고 이것을 주세요.” 가히 ‘이수일과 심순애’에 버금가는 신파극의 표본이라 할 장면이지만 이 대목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 그만큼 메말랐다는 증거가 아닐까.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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