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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대기 응급실, 잊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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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에 사는 회사원 윤모(여·33)씨는 지난 3월 중순 밤 12시쯤 아들(5)의 몸이 불덩이 같아서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인턴이 와서 이것저것 묻더니 전문의가 또 와서 비슷한 것을 물었다. 한 시간 기다려 X선을 찍었고, 이후 다른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대고 입안을 보고 진찰했다. 몇 분 후 다른 의사가 또 진찰을 했다. 전문의가 와서 “수액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윤씨는 화가 나서 병원을 나와버렸다. 서너 시간 동안 별다른 설명이 없었고 의사만 바뀌었다. 윤씨는 “응급실은 안 가는 게 낫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초 부산에 사는 한 주부의 두 돌 된 아들이 성기가 퉁퉁 부어 소변을 못 볼 지경이었다. 동네병원을 거쳐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전문의는 오지도 않고 응급실 의사를 통해 “내일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 바르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두어 시간 만에 화가 나 병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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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응급실에서 흔히 겪는 경험들이다. 큰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로 넘쳐 앉아 있을 데도 마땅치 않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기도 쉽지 않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주로 진료해 전문의를 만나기도 어렵다.

 한 대학병원이 100억원을 투자해 이런 관행을 깨려는 시도에 나섰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스마트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전공의 위주로 운영되던 응급실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꿨다. 모든 환자에게 한 시간 내에 전문의가 초기 진단을 하고 치료계획을 세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차로 맡고, 세부 진단이 필요하면 내과·외과 등의 전문의가 담당한다. 이를 위해 33개 세부 과목 전문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전국 461개 병원 응급실을 조사했더니 7개 대학병원은 포화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은 포화도가 126%였고 삼성서울병원도 102%에 달했다. 이 두 곳을 포함해 15개가 80%를 넘어 ‘과밀 진단’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은 혼잡을 줄이기 위해 응급실을 신축하면서 면적을 1275㎡(약 385평)에서 1970㎡(약 600평)로 늘렸다. 공간이 늘면서 소아와 성인으로만 구분돼 있던 응급실을 내과·외과·소아과·중환자 구역으로 세분화했다. 병상을 58개에서 69개로 늘리고 응급실 전용 단기입원 병상 13개와 응급중환자실을 4개 추가했다.

 응급실 환자를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게 ‘무작정 대기’다. 의료진에게 물어봤자 잘 알려주지도 않는다. 삼성서울병원은 진료정보종합시스템을 도입했다. 응급실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 환자별 진도를 보여준다. 진료와 검사 순서, 검사 시간, 입·퇴원 예상 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환자가 자신의 식별 태그를 시스템에 갖다 대면 상세한 진료 정보를 환자와 보호자만 볼 수 있게 된다.

 국내 거의 모든 병원은 응급실에서 적자를 본다. 삼성서울병원도 지난해 58억원 적자였는데, 이번 변화로 인해 올해는 적자가 90억원으로 늘어난다. 환자 부담은 변함이 없다.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은 “응급실은 수익성과 거리가 멀어 병원들이 투자를 꺼리는 분야이지만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먼저 응급실 문화를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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