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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는 이공계 약하다? 논문의 질 국내 종합대 1위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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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화여대 정문 바로 오른편에는 지난 5월 문을 연 ‘이화 웰컴 센터’가 있다. 대학을 찾는 관광객이나 외부인을 위한 공간이다. 지난 16일 총장 인터뷰 방문 길에 들른 이곳에는 ‘이화여대, 변화가 시작되는 곳(Ewha, where change begins)’이란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센터 한쪽엔 지난 127년간 이화여대가 배출한 ‘여성 1호’를 모아놓은 공간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태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한명숙),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전효숙),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최인아)까지. “누군가 한 번 간 길은 그냥 따라가면 되지만 최초라는 건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일이라 훨씬 어렵습니다.” 김선욱(61) 총장은 “이화여대가 걸어온 길이 곧 한국 여성의 역사”라고 했다. 김 총장 역시 2005~2007년 여성 최초로 법제처장을 지냈다.

 -남녀평등 시대다. 여대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

 “여성 대통령도 나왔고 국가고시에서 여성합격자도 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남녀가 똑같이 대우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있다. 법조계가 대표적이다. 성적으로만 뽑는 사법고시에선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40%를 넘는다. 실력으로만 평가하면 여성이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대형 로펌에서 여성 변호사 비율은 20% 정도에 그친다. 보이지 않는 다른 기준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해지기 전까지는 여성 지도자를 기르는 대학이 필요하다.”

“여성지도자 되려면 꼭 이대 선택하라”

 -이화여대가 다른 대학과 다른 점은.

 “사범대·로스쿨·의대·음대·미대 등 여성의 사회 진출에 필요한 모든 전공을 갖추고 있다. 나는 고등학생들에게 ‘그냥 대학이 가고 싶으면 아무데나 가라. 그러나 여성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이화여대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모험정신,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는 게 우리의 목표다. 이화여대는 그동안 소수의 여성지도자들을 키워냈다. 앞으로는 각 분야에서 남성과 함께 사회의 절반을 맡아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문들이 많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신문에서 우리 졸업생들에 대한 기사를 챙겨 본다. 오늘도 불경 ‘해심밀경소’를 번역한 동국대 백진순 교수, 뉴욕을 사로잡은 패션디자이너 양유나, 간 이식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이남준 교수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2015년부터 한 학기 기숙사 인성교육

 이화여대는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도입을 추진 중이다. 올가을 시범운영에 들어가 2015년 신입생부터는 3200명 전원을 절반으로 나눠 한 학기씩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캠퍼스 내에 1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짓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미국과 영국 대학의 레지덴셜 칼리지를 견학했다.

 -레지덴셜 칼리지를 만드는 이유는.

 “인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레지덴셜 칼리지는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다. 교수·선배들과 함께 지내면서 수업도 같이 듣고 공동체 정신과 리더십을 배우는 곳이 될 것이다. 인성교육을 위해 올해 신입생부터 교양교육과정도 개편했다. 학생들이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나눔 리더십’ 과목, 인문학 서적을 읽는 ‘고전 읽기와 글쓰기’ 과목을 필수로 지정했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취임하면서 강조했던 슬로건이 ‘Non nobis solum(‘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이란 뜻의 라틴어)’이다. 여성 리더십은 섬김과 나눔의 리더십이다. 이화여대는 한 명의 외국인 선교사에서 출발해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우리가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2006년부터 개발도상국 여학생들을 뽑아 장학금과 생활비를 주며 교육하는 ‘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33개국 154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비정부기구(NGO) 여성 리더들을 초청하는 ‘이화 글로벌 임파워먼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개발도상국 여성 공무원들을 위한 석사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몇 년 뒤에는 세계 각국에 ‘이화 가족’이 많아질 거다.”

 -국제화 부문에서도 성과가 많은데.

 “1971년 국제하계대학(서머 스쿨)을 만들고, 2001년 국제학부를 신설했다. 모두 국내 대학 중 최초다. 2006년부터는 미국 하버드대와 함께 여름 계절학기에 ‘이화-하버드 서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 하버드대 교수진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다. ‘글로벌 여성 교육의 허브’를 지향한다.”

 이화여대는 2011년 벨기에의 다국적 화학기업인 ‘솔베이(solvay)’의 특수화학 부문 R&D센터 유치에 성공했다. 솔베이는 올해 말까지 2150만 달러(약 240억원)를 들여 캠퍼스 내에 연구소를 짓고 이화여대와 함께 태양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등의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기초과학연구단을 유치해 앞으로 10년간 최대 10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세계 5위권 목표, 유망 분야 100억 투자

 -여대는 이공계가 약할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세계 500대 대학들이 최근 3년간 발표한 논문 중 피인용수 상위 10% 논문수를 평가하는 ‘라이덴 랭킹(Leiden ranking)’에서 올해 국내 종합대학 중 1위에 올랐다. 교수들이 그만큼 질 좋은 논문을 쓴다는 뜻이다. 학부생의 대학원 진학률도 지난해 22.7%로 사립대 평균(7.7%)보다 훨씬 높다. 이화여대는 96년 전 세계 여대 중 처음으로 공대를 만들었을 만큼 이공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2011년부터는 ‘글로벌 탑5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망 분야에 3년간 100억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라듐을 발견해 여성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탄 퀴리 부인처럼 이화여대가 제2의 퀴리 부인을 배출하는 게 목표다.”

 -대학의 위기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인데 대학 수준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대학이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학이 사회의 변화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노력과 함께 교육부가 좀 더 많은 자율성을 줘야 한다. 지금은 너무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대학에 자율성을 줘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들이 나온다.”

만난 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이한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김선욱 총장=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계성여고와 이화여대 법학과(71학번)를 졸업했다. 이화여대 법학 석사를 거쳐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95년부터 이화여대 법과대학(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2010년 8월 제14대 총장에 취임했다. 2005~2007년 최초의 여성 법제처장을 지냈다.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장·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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