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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성직자가 왜 잡수입 버는 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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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신문사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잡지에 글 써서 원고료 받거나, 어줍잖게 아는 척하고 강연료 받을 때가 있다. 업계 용어로는 ‘외화벌이’라 한다. 정규 급여 외의 수입이다. 불규칙한 소득이다 보니 용처 또한 불규칙하다. 밥값, 술값, 책값, 아니면 비자금이나 비상금…. 세법상으론 기타소득이다. 일시적이고 불규칙한 소득을 모두 ‘기타(其他, other)’로 분류한 것이다. 쉽게 말해 주수입 외의 부수입이자 말 그대로 기타 잡수입인 셈이다.

 그런데 드물게도 이 기타소득을 주수입원으로 삼는 직업이 나오게 됐다. 바로 종교인이다. 올해 세제개편안에 종교인의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담기면서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5년부터 적용된다.

 이를 두고 정부는 종교인 과세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다. 정부 내에선 과세기반 강화, 공평과세 확립을 이뤘다며 칭송이 자자하다. 과거 정부가 손대지 못했던 일을 뚝딱 해치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종교계도 납세에 긍정적이다. 이미 천주교는 1994년부터 소득세를 자진 납부해 왔다. 자발적으로 납세를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의 대형 교회들도 많다. 불교계 역시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납세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소수다. 대다수 종교인·성직자들이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과세에 긴장하거나 경계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종교인 납세 문제가 깔끔하게 마무리된 건 결코 아니다. 종교인의 봉사나 영적 활동의 대가로 받은 사례금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여전하다. 적잖은 종교인들이 이를 근로소득으로 보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종교인은 속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일하지 않으므로 일반 근로자와 다르다는 얘기다. 신도의 근로는 신성하고 목회자의 봉사는 특수하다는 논리도 있다.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입장이다.

 이런 의견을 감안해 정부는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키로 한 듯하다. 소득세법 시행령은 기타소득의 80%를 경비로 인정하고 나머지에 대해 22%(주민세 포함)의 세율을 매긴다. 총소득의 4.4%가 세금이다. 대체로 근로소득세를 내는 것보다는 가벼운 편이다. 금액에 관계없이 일률적인 세율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고소득자에 더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누진(累進) 과세에 어긋나는 면도 있다.

 따져 볼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신성한 종교활동을 전문적이고 규칙적으로 하고 받은 대가가 왜 잡수입이고 부수입인가. 성스러운 종교인이 법률상 잡수입으로 생활한다면 일반인의 신심에도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또 성직 활동 역시 넓은 의미의 노동 아닌가. 그 대가로 받은 사례금이 생계의 원천인 이상, 땀 흘려 번 근로소득에 가깝지 않은가. 실제 천주교는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다.

 물론 종교인의 모든 소득을 단칼에 근로소득으로 과세하는 것도 쉽진 않다. 수행에 전념하는 종교인이 받은 사례금, 신자가 낸 보시(布施) 등은 근로소득으로 보기엔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 복잡한 사정을 기존 세법에 단숨에 끼워 맞추려다 보니 디테일을 미처 갖추지 못한 듯하다. 이를 두고 “종교인들에게 납세의무를 다했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한 기독교 단체의 성명은 정부에 매우 아픈 비판이다.

 어차피 종교인 과세는 명분과 원칙의 영역이다. 형식을 잘 갖춰야 뒤탈을 막을 수 있다. 세법에 근로·기타소득과는 다른 ‘성무(聖務)소득’이라도 신설해 별도의 세율을 정하든지, 갑종·을종으로 나뉜 근로소득에 병종(丙種)을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함께 신자들은 종교계의 회계를 보다 투명하게 할 방안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데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잘 안 보인다. 이번 세제개편안을 두고 정부는 ‘잘 만들고도 홍보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렇다. 실패한 홍보를 만회하려면 엉성한 부분도 널리 알려 보완책을 구할 필요가 있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