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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가 등단 천안업성고 2학년 심대보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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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천안업성고 심대보 학생이 자신의 단편 소설이 실린 문예지를 보관하고 있는 내 교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천안업성고등학교 심대보군은 요즘 친구들이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얼마 전 한 문예지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수험생이 되는 학생이 공부와는 다소 동떨어진 소설을 쓴다고 하자 부모는 물론 친구조차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심군의 글을 본 한 교사의 칭찬과 격려가 그를 소설가라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심군으로부터 글을 쓰게 된 사연과 꿈을 들어봤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좀 황당하면서 사소했다. 2008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간단한 캐릭터를 그려 만화를 만들거나 짤막한 글쓰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림엔 소질이 없어 잘 그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다.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돌려보며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내가 쓴 글이 인기가 가장 많았다. 친구들이 재미있게 글을 읽는 것도 좋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글을 쓰는 내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글 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

 “초등학교 때 내 글이 가장 재미있다며 글을 써달라고 독촉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학교에 오자마자 내 노트를 낚아채가듯 가져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글 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중학교 시절 쉬는 시간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켰다. 노트를 앞에 두고 무섭기로 소문이 난 국어 선생님과 마주 앉아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선생님은 노트를 가리키며 ‘네가 쓴 글이 맞냐’고 물으셨다. 심한 꾸중을 들을게 뻔한 나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 귓가에 들렸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나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꽤 잘 썼는데. 나중에 이쪽 길로 갈 생각은 있는 거니’. 마음 깊은 곳에서 친구가 아닌 선생님이 내 글을 인정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밀려왔다. 그 뒤로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 선생님에게 글 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혼났지만 재미로 쓴 글이 아닌 제대로 쓴 글을 선생님에게 꼭 인정받고 싶었다. 가끔 글 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글을 쓰면서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선생님의 답글이 하나 달렸다. ‘아주 잘 썼다. 문장이 탄탄하고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아주 잘 써내려 갔구나. 수고했다’라는 칭찬을 듣고서야 드디어 선생님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소질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제 몇 편이나 글을 썼고 주로 어떤 내용인가.

 “많이는 쓰지 못했다. 학생이기 때문에 온전히 글 쓰기에만 집중할 수 없어 주말이나 새벽에 글을 쓰기 때문이다. 한 달간 캐릭터와 내용을 잡고 2~3개월 글을 써 초고를 완성한 뒤 다시 2~3개월간 글을 고쳐나간다.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6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주로 다루는 내용은 우리 주위에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다. 무엇이든 글 쓰기 소재가 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엉덩이가 무겁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자에 앉아 노트에 펜을 휘갈기고 다시 정리해가며 자판으로 차근차근 옮긴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힘들었다. 무언가 정말 풀리지 않을 때는 반 나절 이상을 책상에 앉아 빈 노트만 노려보며 있었던 적도 있다. 주로 글 쓰는 시간이 주말이나 새벽이어서 자기 직전 침대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렇게도 아까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새벽 3~4시까지만 쓰고 피곤에 지쳐 잤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아까웠다. ‘조금만 더’ 하다가 글 쓰는 시간이 늘어 결국 해가 뜨고 알람 시계가 울린 적이 많았다. 그 상태로 학교에 가 졸면서 수업을 받은 적도 많고 점심시간에는 밥도 안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잔 적도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 별명이 ‘시체’였을 정도였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써서 각종 대회나 문예지에 투고했는데 성과는 없었다. 소설 분야는 제한연령이 높았기 때문에 제한연령대가 낮은 산문이나 청소년 대상 소설 대회에 글을 투고했다. 정말 수없이 많은 곳에 지원했지만 매번 미역국을 마셨다. 게다가 부모님 사이에 갈등까지 생겨 정말 힘들었다. 내가 쓴 글을 주위에 보여주었지만 내가 쓴 것이라고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더 이상을 글 쓰기를 접고 6개울간 생각에만 빠져 산적도 있다. 심지어 ‘소질도 없는데 돈과 시간만 허비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결국 등단했다. 그 때의 기분과 앞으로의 목표는.

 “힘든 시기를 거쳤기에 결과는 더욱 달고 값졌다. 학교가 끝나고 당선 소식이 휴대폰 문자에 찍혔다. 처음엔 누가 장난으로 문자를 보낸 줄 알았다. 메시지에 뜬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선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글을 쓴 당사자가 맞냐며 물어왔다. 어머니는 뛸 듯이 좋아하셨다. 문예지 안에 실린 글과 사진을 보자 다시 마음이 설레고 벅차 올랐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가는 것이 목표다.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아 노련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 생애 첫 장편소설도 써 볼 요량이다. 창작의 고통에만 시달리며 살면 좋겠다. 그 고통이라면 죽을 때까지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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