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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샘암 수술 명의, 안식월에 몽골로 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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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항석 교수(왼쪽)가 지난달 몽골국립암센터에서 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대학병원 외과 교수에게 안식월이란 매일 울리는 응급호출 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이 안식월에 해외 의료봉사를, 그것도 자비로 다녀온 의사가 있다. 갑상샘암 수술 권위자 장항석(50·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연세대 의대 교수. 장 교수는 지난 7월 중순, 교수로 일하며 처음 얻은 안식월을 몽골에서 보냈다.

 대개의 경우 의료봉사를 할 땐 해당 국가에서 체류비 등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장 교수는 400여만원 되는 비행기값과 2주간의 체류비 등을 자비로 충당했다. 진료 지원 인력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의 봉사는 진찰하고 약을 나눠주고, 간단한 처치를 해주는 일반적인 해외 의료봉사와 달랐다. 그는 암환자 10명을 수술하고 왔다. 암 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고 건드리는 혈관·신경이 많아 의사에겐 부담이 큰 일이다. 장 교수는 “약 나눠주는 일은 현지 의사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고난이도 수술”이라고 했다.

 장 교수의 이번 봉사는 몇 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으러 한국에 온 몽골 환자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난치성 갑상샘암 환자였다. 몽골에서 두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수소문 끝에 장 교수를 찾아왔다. 장 교수는 난치성 갑상샘암을 전문으로 수술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의사다.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와 독일 마틴루터대병원 교수진과 함께 난치성 갑상샘암의 명의로 꼽힌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그의 마음은 안타까웠다. ‘처음부터 수술을 제대로 받았으면 환자가 저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 국립암센터로 갔다. 시설과 간호사 부족으로 장 교수는 하루 2건 정도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현지 의사들에게 암 수술법을 전수했다. 그는 “수술할 때마다 의사들이 A4용지를 한웅큼 가져와 모식도를 그리고 열심히 질문하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면서도 아렸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몽골로 의료봉사를 갈 예정이다. 그는 “이참에 몽골뿐 아니라 의료후진국의 의사들을 한국에서 훈련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많은 암 환자가 있는데 왜 몽골까지 가서 봉사를 하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한국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암 수술 잘하는 의사가 충분히 많다. 하지만 몽골에는 난이도 높은 수술을 할 줄 아는 의사가 아예 없다. 한국에선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이들이 거기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게 안타까웠다.”

 그는 행려병자를 치료하는 등 평생 의료봉사와 사회봉사활동을 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1911~95) 박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아버님(장임수·78)도 의사셨는데, 장기려 박사님 제자였다. 아버님도 늘 ‘장기려 박사님이 행하신 것처럼 의사는 잘 살면 안 된다. 환자에게 돈이고 뭐고 다 내줘야 하는 봉사자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 세계 오지를 다니면서 의료 기술을 전하고 봉사하며 사는 게 꿈이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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