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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 칼럼

세금요? 더 거둬야죠, 나만 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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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국세청이 박수 받는 방법이 있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자를 집중 세무조사해 거액을 추징했다”는 보도자료를 자주 뿌리면 된다. 조사할 사람과 기업은 널려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일반적으로 세무조사는 공정한 법 집행 이전에 다수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세금도 안 내면서 떵떵거리며 살더니 고소하다”는 놀부 심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평등의식이 지배하는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땅의 부자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는 편견에 늘 시달린다.

 가진 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무조사는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소득 재분배에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부자와 기업주에게서 거둔 돈을 저소득층을 위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세무조사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하에 숨어 있던 구린 돈을 찾아내 서민 복지에 쓴다고 했다.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고 말하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복지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5년간 135조원이 필요하다. 새로 빚을 내지 않는다면 재정지출 규모를 줄이고 세금은 더 거둬야 한다. 세무조사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는 배경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 세무조사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 칼날이 점점 나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박수소리는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다. “이런 중소기업에 뭘 털 게 있다고 오라 가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부자와 대기업을 겨냥한 세무조사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자신을 향하면 사람들은 돌변한다. “가뜩이나 죽겠는데 세무장이까지 나서 장사를 망치려 든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이들이 세무조사를 받으면 다짜고짜 정부를 욕한다. 대기업 다 놔두고 우리 같은 구멍가게를 괴롭히는 건 사회정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득이 적은 근로자도 세금은 남의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세금정책의 기본 중에 개세주의(皆稅主義)가 있다. 소득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모든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둔다는 원칙이다. 세정담당 공무원은 끊임없이 이 문제에 도전하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의 표가 무섭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2013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보통의 월급쟁이를 겨냥했다가 박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다. 연 소득 3450만원 이상을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둘 것임을 예고했다가 나흘 만에 백지화했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라 했더니 만만한 근로자만 제물로 삼는다는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증세가 필요한 줄은 알겠으나 다들 나는 빼달라고 요구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재원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빚내서 쓰고 그냥 자식세대에 떠넘기는 수밖에 없다.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