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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 명관 … 월가, 벌써 버냉키 퇴임 이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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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요즘 미국 월가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퇴임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2006년 2월 1일 버냉키가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연준 의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시장은 그린스펀을 아쉬워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린스펀과 달리 버냉키는 유약해 보였다. 당시 잔뜩 부푼 주택 버블과 금융 불안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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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버냉키는 ‘설득의 리더십’으로 난관을 하나씩 돌파해냈다. 2009년과 2010년 1·2차 양적 완화 정책에 이어 지난해 9월 3차 양적 완화 정책 단행 땐 연준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그는 주말 동안 연준 이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전했다. 결국 3차 양적 완화 정책에 공식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이사는 한 명뿐이었다.

 버냉키는 연준 내 반대파를 권위로 찍어 누르지 않고,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풀어줌으로써 오히려 반대파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노련함도 보였다. 처음엔 매파들이 버냉키와 다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시장이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월가는 버냉키의 입에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언론을 기피한 그린스펀과 달리 그는 기자회견도 자청했다.

 최근 연준 내에선 경기부양을 계속하자는 ‘비둘기파’와 출구전략에 착수해야 한다는 ‘매파’ 간의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차기 연준 의장이 누가 되든 설득의 리더십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노무라증권의 미국 경제 책임자 루이스 알렉산더는 “연준 내에서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시장에서도 불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차기 의장 물망에 오른 가장 강력한 후보 두 사람은 이런 기준에서 보면 버냉키에 못 미친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성격이 강하기로 소문났다. 반대 의견에 관대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재닛 옐런 현 연준 부의장은 대표적인 비둘기파다. 매파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자칫 연준 내 불협화음이 밖으로 새 나온다면 시장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차기 의장에겐 정책 수단의 선택지도 많지 않다. 버냉키는 초저금리 정책으로 시작해 충격 요법인 양적 완화 정책을 세 차례나 썼다. 그러고도 물가상승률은 재임 기간 연평균 1.9%로 붙들어 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준 의장 중 최고 성적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은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곤 있지만 이런 기록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풀려 있는 돈이 워낙 많아서다.

 반면 실업률은 여전히 7.4%다. 연준이 출구전략의 기준으로 삼은 6.5%엔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앞으론 추가 경기부양책은 쓰기 어렵다. 거꾸로 돈줄 조이기에 착수할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 경기부양을 축소하면서 실업률은 떨어뜨려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는 얘기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가 인준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질 것 같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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