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의 유쾌한 베토벤 런던 6000여 관객 사로잡아

중앙일보

입력 2013.08.19 00:05

업데이트 2013.08.1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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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피아니스트 김선욱

14일 오후 6시(현지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홀 앞. 피아니스트 김선욱(25)은 공연장을 둘러싼 긴 행렬을 바라보며 홀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날 밤 ‘BBC 프롬스(Proms)’ 메인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앞둔 시점이었다.

 김선욱은 새로 산 구두가 혹시나 페달을 밟을 때 미끄러질까 봐 밑창을 거칠게 하려고 그렇게 걸어 다녔다.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프롬스 데뷔는 그가 오랫동안 기다린 순간이었다. 한국인 연주자로는 1972년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시작으로 백건우(1986), 강동석(1987), 정명훈(1999), 사라 장(1999), 장한나(2006), 연광철(2013)의 뒤를 이어 프롬스에 김선욱 이름 석 자를 올렸다.

 김선욱을 프롬스로 이끈 이는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37)였다. 2009년 3월 서울시향 협연에서 김선욱을 처음 만난 카라비츠는 탄탄한 기본기와 더불어 오케스트라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를 높이 샀다. 카라비츠는 여러 차례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번머스 심포니’에 김선욱을 초대했고 지난해 5월 ‘2013 프롬스’ 협연을 요청했다. 최근에는 2014년 시즌부터 번머스 심포니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해줄 것을 제안했다. 음악적 영향력을 함께 키워나갈 파트너로 카라비츠와 번머스는 사실상 김선욱을 지목한 것이다.

 첫 곡인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이어 김선욱이 6000여 관객 앞에 등장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노제다 지휘의 BBC 필하모닉, 김대진 지휘의 수원시향과의 연주를 통해 서울 무대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전의 해석과는 달리 카덴차(협연 중 독주 부분)에서도 건반의 무게감을 뺀 경량감으로 베토벤의 맨 얼굴이 새롭게 드러났다. 에너지와 프레이징(구절법)을 언제 어떻게 조절하겠다는 계산된 접근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운 해석을 관객들과 나누고픈 유쾌한 긴장감이 앨버트홀에 감돌았다. 지난해 11월 역사주의 연주의 대가, 존 엘리엇 가디너와의 베토벤 4번 협연, 다양한 각도에서 베토벤을 조명하고 있는 LG아트센터 ‘베토벤 소나타 전곡 시리즈’의 훈련이 김선욱의 베토벤 시야를 넓혀 놓은 결과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발을 구르며 김선욱을 불러냈다. 김선욱은 천천히 앨버트홀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커튼 콜에 답했다. 41년 전 이 무대에 올랐던 정경화는 김선욱에게 “클래시컬 연주가로 런던에서 버티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충고했다. 김선욱의 버티기가 이렇게 시작됐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BBC 프롬스(Proms)= 올해로 119회를 맞은 영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과 함께 유럽의 여름 클래식 시장을 대표하는 축제다.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8주 동안 6000석 규모의 로열 앨버트홀은 좌석 점유율 95% 이상을 기록한다. Prom은 Promenade concert의 약자로 야외광장·정원 등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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