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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알리기? 한국 나누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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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31면

매년 8월이면 미국 누이동생 집에서 휴가를 보내며 짧은 여행을 한다. 올해는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의 워싱턴DC 방문 여행에 동참했다. 이 단체는 뉴욕에서 한국미술갤러리를 운영하는 로버트 털리씨가 2008년 만든 연구회다. 매년 미 동북부 지역에서 한국 미술품을 보유한 미술관을 방문해 소장품을 감상하고 담당 큐레이터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미국 국립박물관·미술관을 다수 운영하는 스미스소니언협회 소속 미술관을 이틀간 둘러보며 한국 미술을 보고 배웠다.

첫째 날은 프리어 미술관을 방문해 고려자기의 독특한 기법과 조선시대 분청 기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소장품을 모은 19세기 미국 기업가 찰스 프리어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이후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서 백남준 특별전을 기획한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백남준이 1960년대 중반에 제작한 비디오 아트를 감상했다. 둘째 날엔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한국전시관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70년대 초에 촬영한 옹기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살펴봤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원들에게 한국 미술에 빠진 이유를 물어봤다. 이들은 ‘미술관 소장품을 직접 보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타인의 영향으로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니라 한국 미술을 많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을 본 뒤 관심을 갖게 돼 전시 또는 책을 찾아보며 스스로 배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남에 의해 주입된 지식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의 주인이 된 것이다.

꾸준한 독학을 통해 한국 미술을 배우는 과정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 및 관련 기관의 ‘한국 알리기’ 활동에선 보이지 않았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이 지원하는 ‘한국 알리기’ 활동에는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계몽주의적 서사가 흐른다. 이는 남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우리’와 ‘남’을 분리해 단절을 만든다. 이런 단절이 존재하는 한 ‘한국 알리기’는 어려워진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우리 한국인’과 ‘타자 외국인’이라는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기관에 국제감각을 갖춘 이들을 고용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게 첫걸음이다. 흔히들 국제감각을 영어 실력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외국인과 소통하려는 태도다. 소통은 상호적인 것이고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번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의 여행을 통해서도 소통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소통이 중심이 된다면 일방적인 ‘한국 알리기’는 사라지고 ‘한국 나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해외에서 중국·일본 문화에 대해 갖는 관심은 그 나라의 지원을 바탕으로 추진한 일방적 ‘알리기’가 아니다. 국제감각이 있는 사람과 외국인의 소통을 통한 ‘나누기’이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외국인들이 스스로 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풍토를 마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나누기’로의 전환을 위해 중요한 측면은 또 있다.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워싱턴DC에 한국 미술품이 없었더라면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가 진행할 수 있는 일정은 없었다. 프리어 미술관의 한국미술 소장품 도록(圖錄)이 오랜 기간 없었던 것이 문제였는데 올해에야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출간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미술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뉴욕에 사는 60대 미국인 부부와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뉴욕 한국문화원 행사에 참여하며 한국인 친구를 만들고 한국에 대해 즐겁게 독학한다고 했다. 감동적이었다. 그들이 한국 미술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흥을 다시금 느꼈다. 이게 바로 진정한 ‘한국 나누기’ 아닐까.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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