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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위에 거실 옥상은 갑판 데크 호화 요트 뺨치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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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22면

1 유니언 호수의 다양한 플로팅 하우스 ©Gil Aegerter
2 유니언호 플로팅홈: 시애틀의 건축사사무소 ‘Vandeventer + Carlander Architects’가 설계한 플로팅 홈 ©Ben Benschneider 3 바다 위의 축구 스타디움 ©stadiumconcept

물의 계절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장마가 길다. 눅눅해지는 빗물은 지겹지만 방학과 휴가를 맞아 찾아간 피서지에서는 물놀이가 한창이다. 물은 사람에게 떼려야 뗄 수 없다. 엄마 배 속부터 물속에서 놀았고 태어난 몸속에는 70퍼센트가 수분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 표면적의 70퍼센트도 물이고 생물은 물 없이는 살지 못한다. 전통 풍수에서는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바람을 머물게 하고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 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서로 다투지 않고 결국에는 낮은 데로 처한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하여 최고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명철의 집 이야기 <24> 물 위의 집, 플로팅 홈

그래서인지 사람이 물가에 이르면 몸과 마음이 원초적이 된다. 펼쳐진 수평선은 나를 평안하게 하고 잔잔한 물결의 리듬감은 어디론가 나를 이끄는 것 같으며 산뜻한 물소리와 냄새는 아득한 마음의 밑바닥(심저·心底)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물 위의 집(Floating Home)’은 1993년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부인을 잃고 아들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톰 행크스의 집은 시애틀 중심부에 있는 유니언 호숫가의 수상가옥이다. 미국 서북부 끝단 캐나다와 마주한 워싱턴주의 수도 시애틀은 미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다. 이 도시의 유일한 단점이자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겨울. 우리나라 장마처럼 지루하게 내리는 겨울비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잠 못 이루는 밤에 뒤척이고 있다. 미국 커피의 밋밋한 숭늉 맛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신화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시애틀 동쪽 캐스케이드 산맥 아래에 있는 커다란 워싱턴 호수에서부터 태평양으로 흐르는 물이 다운타운 한가운데 모여 경치가 아름다운 유니언 호수를 이루고 있다. 영화 속 건축가로 등장하는 톰 행크스의 집은 호수 서편에 있고 지금 소개하려는 ‘물 위의 집’은 맞은편 페어뷰 에비뉴(Fairview Ave.) 도로가에 있는 200여 채의 수상가옥 중 하나다. 시 정부가 환경 보호 문제로 신규 허가를 억제하면서 전망 좋은 이 지역의 집들이 각광받고 있다.

단지 북측 끝단에 있는 8채 중 가운데 위치한 이 집은 2008년 신축됐다. 지정된 도로변 주차장을 거쳐 호숫가 데크를 걸어가면 마치 주택가 골목길에 들어선 것 같다. 좌우로 4채씩이 있고 데크 길 끝자락에는 호수의 전경이 펼쳐진다.

엄격해진 규정을 따르면서 최대한 건축 면적을 확보하려는 건축주의 요구대로 ‘상자형’이지만 내부의 각 실, 방들의 용도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투영된 외관은 꽤나 아기자기하다. 유리와 삼나무, 돌과 시멘트 패널 및 각종 철물이 필요한 만큼 적절히 비주얼 요소로 조합돼 기존 수상 가옥들 사이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거주(living) 기능에 더해 물을 즐기기(entertain) 위한 집이다. 그래서 1층에는 비교적 유동이 적은 침실을 두고 2층에는 거실과 식당 등 공용 공간을 원룸 형태로 꾸몄다. 거실 남쪽의 발코니로 나서면 남서쪽으로 호수의 쾌적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트인 넓은 옥상 데크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3개 층 공간 구조 -아래층 침실, 중간층 거실, 위층 갑판 데크- 는 호화 요트를 연상시킨다. 바다 위 수상 생활의 고단함이 없는, 호숫가에서 ‘물을 만끽하고 물 위의 생활을 즐기기’ 위한 집주인의 의도가 적극 반영된 것이다. 더불어 플로팅을 위한 구조물인 함체(pontoon) 공간까지도 알뜰하게 부대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흘러간 영화 속 허름한 건축가의 단층짜리 수상가옥과 비교하면 유니언 호숫가에 있는 물 위의 집들이 점차 고급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만금개발청의 ‘바다위 청사’ 관심
삼면이 바다에 계곡·개천·강이 풍성한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물가나 물 위의 생활이 활발해지는 ‘마리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를 사업화하려는 프로젝트들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손쉬운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일확천금하려는 것에서부터 중국과의 교역을 발판으로 밑도 끝도 없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업들까지, 우리나라의 자랑인 길고 긴 해안선 주변을 들썩이고 있다. 최근 몇몇 대형 사업들이 좌초되는 바람에 애꿎은 주민들의 피해만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사업이 1989년 노태우 대통령 공약으로 시작된 지 24년 만에 본격화되고 있다. 차관급으로 승격된 새만금개발청은 9월 1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바다 위 도시를 구축해 새로운 황해시대를 맞이하려는 취지에 맞춰 첫 사업으로 ‘바다 위 청사(Floating Office)’를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2011년부터 국토해양부 주관 하에 군산대학교를 주축으로 ‘플로팅 건축 연구단’을 출범시켰다. 우리나라 수(水) 공간에 적합한 물 위의 집을 기본적인 구조에서부터 에너지·인프라·입지·친환경·사업성·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새만금개발청의 청사 건축을 물 위의 집 시범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변덕스러운 지구환경으로부터 물 위에서 인류를 구해내듯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서 나아가 더 큰 물과 더불어 살 수 있을 때 우리나라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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