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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왜 그럭저럭 쓸 만한 전통의 틀을 깼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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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24면

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의 말년은 ‘음악의 황제’ 신분과는 매우 다른 고독한 처지였다. 당시는 왕정복고 시대, 제국의 수도인 빈의 예술적 황제는 누가 봐도 베토벤이었다.

영화 ‘마지막 4중주’

그러나 귀가 먹은 베토벤은 황제는커녕 하녀 이외는 아무도 옆에 없는 철저히 고립된 노인이었다. 그런데 작품만은 황제의 위상에 걸맞은 걸작들의 연속이었다. 훗날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이때의 작품들만 묶어 ‘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라는 왕관을 씌운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가 의도적으로 전통의 틀을 깨고 파격을 보인 데 대한 찬사다.

신예감독 야론 질버만의 ‘마지막 4중주’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결성 25주년을 맞은 푸가4중주단이 기념공연의 연주곡으로 14번을 선택했고, 그래서 우리는 멜랑콜리한 14번을 반복해 듣는다. 슈베르트가 죽기 전 5일 동안 이 음악만 들었다는 에피소드 때문에라도 유명한 곡이다.

결성된 지 25년이나 됐으면 가족 같은 결속과 원숙미가 배어나올 것 같은데, 4중주단의 실상은 난관과 문제투성이다. 먼저 연장자인 첼리스트는 몸이 경직되는 파킨슨병 선고를 받아 당장 연주활동을 접어야 할 위기에 빠진다. 부부 사이인 제2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별거에 들어갔고, 팀의 리더인 제1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들 부부의 딸과 ‘민망한’ 사랑에 빠졌다. 말하자면 팀은 연주회도 못 해보고 해체될 위기다.

첼리스트는 이런 사정을 현악4중주 14번의 연주에 비유한다. 이 곡은 특이하게 7악장으로 구성돼 있고, 중간에 휴지기가 없다.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 연주를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도중에 악기 사이의 음조가 틀릴 수 있다. 그렇더라도 연주를 중간에 그만둘 수 없고, 연주자들은 꼼짝없이 서로에게 음조를 맞춰가며 끝까지 가야 한다. 첼리스트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다른 단원들의 스승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후배들이 지금의 난관을 마치 14번을 연주하듯 밀고 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현악4중주 14번은 아도르노가 ‘말기의 양식’이라고 부른 작품 가운데 베토벤이 남다른 애착을 가진 대표작이다. 죽기 1년 전 작곡한 것이고, 그래서인지 진혼의 느낌이 강하게 배어 있다. 슈베르트가 죽기 전에 괜히 이 곡을 들은 게 아니고, 또 바그너는 ‘(서양)음악사 최고의 멜랑콜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의 양식이 파격에 방점이 찍힌 데서 짐작할 수 있는데, 14번은 결코 듣기에 쉬운 곡이 아니다. 아마 고전음악 초급자라면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듣는 긴장과 불안마저 느낄지 모른다.

토머스 먼은 말년의 대표작 『파우스트 박사』에서 “베토벤은 스스로 그럭저럭 쓸 만한 전통이라는 편안한 틀을 깨버렸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넘어갔다”고 말한다. ‘마지막 4중주’가 찬사를 보내는 것도 바로 이런 베토벤적인 파격이다. 영화의 원제목이 ‘A Late Quartet’인데, 말하자면 ‘말년의 4중주’이고, 따라서 베토벤의 말년성에 대한 특별한 주목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단원들 사이의 문제라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배치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이 연주될 때다.

단원들이 포기의 유혹에 휘둘릴 때 첼리스트는 딸 같은 비올리스트와 함께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 미술관을 찾아간다. 렘브란트의 ‘자화상’(1658)을 보기 위해서다. 역시 말년의 자화상인데, 한때 세상을 주름잡았던 대가가 파산선고를 받아 추락의 위기에 빠졌을 때 나온 작품이다. 화가는 금빛 의상으로 얼핏 위기를 가장한 듯하지만, 불안의 공포는 눈동자에 그대로 새겨 놓았다. 말하자면 렘브란트는 이상화하는 일반적인 자화상과는 달리 파격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4중주’는 이런 파격에 대한 오마주의 영화다. 전통에 기대기보다는 현실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예술적 고독을 지지한다. 영화는 그런 예술가적 태도의 표상을 베토벤에서 찾았다. 특히 베토벤의 말년에 대한 흠모와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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