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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김영란법'은 선진국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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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행정학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라는 긴 명칭의 법안이 국회에서의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다. 우리에게는 ‘김영란법’으로 더 익숙한 이 법이 정부 내에서 논란을 거친 끝에 이제 국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청탁의 범위나 청탁에 따른 처벌 수위 등을 놓고 정부 부처 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었다. 당초 국민권익위원회의 안에서는 청탁에 따른 형사처벌 조항을 뒀으나 법무부 등과의 논의 과정에서 이 조항이 완화됐다가 다시 강화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나마 합의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처음 이 법안이 제안됐을 때 많은 사람이 청탁도 처벌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이해충돌이 무엇인지 등 어찌 보면 기초적인 의문까지 제기했었다. 그런데 2년의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청탁에 대한 처벌은 물론 왜 이해충돌이 방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긍정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그나마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규모, 수출액 규모, 1인당 국민소득 등 많은 경제적 지표들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또 다른 지표에서는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율, 자살률, 환경지수, 행복지수, 그리고 부패지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중에서도 압권은 부패지수다. 이 지수는 최근 수년 동안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매년 측정·발표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꼴찌이고, 점수로도 60점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낙제점 수준이다.

 이를 보여주듯 최근에도 원전 비리, 검찰 고위직 부패, 국정원장 부패, 대기업 총수 부패 등 대형 부패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이와 같은 일들이 쉼 없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를 막기 위한 법이 없어서인가? 검찰권이 약해서인가? 대통령의 의지가 없어서인가? 이유를 찾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오래전부터 선진국이라 분류되고 있는 국가들과 비교해 우리에게 아직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해충돌 방지법’이다. 이해충돌은 공직부패가 발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이해충돌의 방지는 곧 부패의 사전적 방지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서 이해충돌 방지법을 제정해 활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그럴듯한 명칭의 공직자윤리법이 있지만 이 법은 일부 공직자의 재산등록과 공개, 퇴직 후 취업 제한 등을 규율하는 제한적인 법이며 공직윤리 확보를 위한 핵심인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법은 아니다. 이해충돌의 방지와 관련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공무원 행동강령이 있지만 이 법은 대통령령으로서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윤리법 등 기존의 법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 부패 방지와 공직윤리 확보를 위한 핵심적 틀로서 이해충돌 방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처벌 수위를 놓고 부처 간 갈등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골격만 놓고 보면 이 법은 부패 방지와 관련한 선진국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의 합리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반드시 입법화돼 우리도 공직사회의 이해충돌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선진국법을 갖기를 희망한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