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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막힌 외국인 투자 2조30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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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손자회사가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돼 있어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어렵습니다.”(윤장효 SK종합화학 사업부장) “9월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을 재추진하겠습니다.”(현오석 경제부총리)

 현 부총리는 1일 울산 온산공단 입주기업 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단정적인 약속을 했다. 그만큼 급하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 부총리가 이 약속을 못 지키면 어렵게 성사된 투자계약 2조3100억원이 날아간다. SK와 일본 업체의 1조3100억원, GS와 일본 업체의 공동 투자 1조원이다. 반대로 이 투자가 성사되면 화학제품 수출을 매년 4조원씩 늘릴 수 있다.

국회 상임위 “대기업 특혜” 제동

 들어오는 투자를 밀어내는 것은 증손회사 규제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증손회사를 만들려면,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GS칼텍스·SK종합화학·LG디스플레이·두산인프라코어 같은 굵직굵직한 기업이 대표적인 손자회사들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현행법상 손자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외국기업과 지분을 공유하는 합작사를 세우는 게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사실 지주회사는 한때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권유했던 체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SK종합화학은 외국인 투자 4800억원을 포함한 총 9600억원 투자계획의 발목이 묶였다. 이 회사는 일본 JX에너지와 합작으로 올 상반기부터 울산에서 화학제품인 파라크실렌(PX·Para Xylene)을 연간 100만t씩 생산하는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었다. SK 관계자는 “연내 결론이 나지 않으면 공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SK루브리컨츠의 울산 윤활기유 공장(3500억원 투자)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GS칼텍스도 마찬가지다. ㈜GS의 손자회사인 GS칼텍스는 일본 쇼와셀·다이요오일에서 5000억원을 받아 총 1조원 규모의 화학공장을 여수에 세울 계획이다. SK종합화학과 마찬가지로 PX를 연 100만t 생산하는 공장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앞으로 PX 수요가 연평균 6∼7%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지금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며 “공장 건설이 늦어지면 중국 등으로 외국인 투자가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PX는 나프타를 재료로 2차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제품으로 섬유·페트병 등의 재료로 쓰인다. 특히 PX 원료는 일본 업체가 주로 공급하고, 이를 가공하는 기술은 한국이 앞서 있기 때문에 양국 합작을 해야 이득이 커지는 분야다.

올해 외국인 직접투자 70% 감소

이렇게 예정된 투자마저 지지부진하면서 다른 투자도 주춤하고 있다. 상반기 화공 분야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억2700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70% 줄었다.

 정부도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기업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미 지난 4월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약속했다.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도 포함됐다. 정부는 시급성을 감안해 논란이 클 수 있는 공정거래법은 그대로 두되,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을 고쳐 예외를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입법 절차 단축을 위해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의 입법으로 외촉법 개정안을 냈으나, 이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란 반론 때문이다.

기업들 “중국 등에 뺏길라” 애태워

 이와 관련해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이런 문제를 풀어줄 것으로 기업은 기대할 텐데…”라며 “정부를 믿고 합작투자를 추진했던 기업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고 말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에 비해 과도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급한 대로 외촉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 문제는 ‘투자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실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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