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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예술 아닐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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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토요일 저녁이면 가끔 영화관에 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광경과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편한 옷차림이고, 일주일을 마쳤다는 흡족함이 가득한 얼굴들을 보게 된다. 영화 속 다른 이들의 삶도 흥미롭다. 억만장자 개츠비도, 광해군도, 6살 지능의 딸 바보 용구 아저씨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나와 신분이나 처지는 다르지만 그들의 삶에도 사랑, 미움, 분노와 갈등, 그리고 행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감정적 리얼리즘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얼마 전엔 ‘월드 워 Z’라는 영화를 봤다. 할리우드적 상상력이 세계대전을 하나 또 만들었다. 이번엔 좀비들과의 전쟁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얘기다. 역시 서부극의 패턴을 도입했다. 악당과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다. 감염되면 얼굴이 이지러지고 괴력이 생기게 된다. 건강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공포에 몰아넣어 보는 사람들이 곧 주인공 편이 되게 한다. 과장도 많고 역겨운 장면도 있지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재밌게 봤다.

 이 안에도 사람 사는 모습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주변에 항상 위험은 있다. 그리고 위기라고 불리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위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겁에 질린 사람, 자만하는 애송이, 위기를 과장하는 이, 방관하는 이, 해결에 나서는 영웅 등이 있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무얼까, 나는 어디쯤에 속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친김에 한 편 더 봤다. 이왕이면 영화제 수상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내려받아서 봤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란 한 청년의 비참한 죽음에 관한 얘기다. 악덕 사채업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살다가 엄마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겪는 마음의 갈등도 담겨 있다. 칼, 피,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너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면의 처절한 영상미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징그럽고 끔찍하고 역겨운 느낌도 오래 남는다.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 ‘피에타 상’의 평온하고 경건한 장면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한국영화 최초로 받았다 한다. 세계적인 영화평론가나 이론가들이 그 예술성을 인정했다는 거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점이 무얼까? 대중영화는 대중성을, 예술영화는 예술성을 더(?) 강조한단다. 대중성이야 많은 사람의 취향과 흥미에 맞는 것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예술성이란 개념은 너무 모호하고 넓다. 작가의 의도나 개성이 짙게 깔린 작가주의라 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새롭게 보게 하고, 영상이나 화면 구성에서 작가의 개성적인 색채와 의도를 담아낸다는 거다.

 미술작품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고흐의 태양 그림을 보고 고흐의 고통과 번뇌를 느낄 수도 있고, 무심히 지나친 태양도 다시 한번 보게 된다는 거다. ‘피에타 상’에서 경건한 종교적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미켈란젤로 식의 묘사가 되어야 한다.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의 잔인함과 비참함을 실감 있게 나타내려면 갈기갈기 찢긴 형태를 연상케 하는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예술적 장치를 감안하고 ‘피에타’를 다시 본다면 거기서도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우리 대부분이 덮고 싶어 하는 삶의 현장을 다시 보게 한다. 인간의 양면성도 느낄 수 있다. 버림받은 청년이 갖게 된 복수심, 잔인함, 동물적 분노도 있지만 엄마를 만나서 느끼는 애정과 인간적인 따스함도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을 표현한 몇 가지 유형도 등장한다는 점에서 ‘피에타’라는 제목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여전히 끔찍하고 잔인하며 역겹다는 느낌은 있다. 예술성을 위해선 충격이 필요하다고? 꼭 그렇진 않다. 영화 속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영화 밖에서 김 감독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향한다면 예술성과 대중성이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