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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 칼럼

이유극강의 대북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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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80)는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특히 그가 쓴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동양권 지식인의 삶에 대한 관조(觀照)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비스듬히 누워 그의 수필집을 읽다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한 대목이 화들짝 눈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수재였던 그 친구는 의지와 결단력이 강한 신사였으며 건강에도 신경을 써 술·담배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 친구에게는 아무리 늦게 집에 들어가도 반드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오늘 있었던 그 일은 용서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잠을 못 이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일기에 적어놓고, ‘이것만은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적어둔 일기가 그 사람 키만큼 쌓였을 때 그는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쓰키는 그 친구와 같이 성실한 남자는 일찍 죽고, 자기처럼 엉망으로 사는 사람은 어째서 여태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인생의 부조리를 탓합니다. 하지만 내심은 그게 아니었다고 봅니다. 살다 보면 참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원한을 되새기고, 복수를 다짐하면 이쓰키의 친구처럼 그 순간은 마음이 편해질지 몰라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은 자기 몸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 이쓰키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용서를 하는 편이 자신을 위해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지난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나쁜 기억력 탓인지, 혈액형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습니다. 술·담배를 가까이 하면서도 이 정도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타고난 망각증 덕분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주변에 보면 구원(舊怨)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병을 재촉한다”는 저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기억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완벽주의자·원칙주의자·합리주의자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 특히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완벽하고 철저하고 합리적인 만큼 상대방도 그렇기를 바라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남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한 시각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기준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면 보수꼴통, 미래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면 종북좌파로 낙인찍히는 게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온 남침부터 핵 무장까지 북한의 잘못과 문제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북한의 과오를 용서할 수 없으니 철저히 계산하고 따져야 한다는 원칙론적 입장에도 물론 일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과거에 얽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미래지향적 입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우기기만 해서는 갈등과 분열의 골만 깊어집니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확실하게 원칙론에 입각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 실무협상에서 보듯이 마치 군사작전하듯 남북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북정책의 핵심 라인에 ‘별’들이 워낙 많아서일까요. 원칙론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원칙에만 매달리다 보면 부러지기 쉽습니다. ‘이유극강(以柔克剛)’이란 말도 있지만 부드러운 것이 결국 강한 것을 이깁니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유연성과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길을 걸을 때는 앞을 보고 가야 합니다. 뒤를 보고 가서는 멀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없습니다. 앞을 본다고 해서 과거를 잊고, 다 용서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과거는 가슴에 담아두되 머리는 앞을 향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뒤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는 멀리 가기도 전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 모릅니다. 나는 절대로 옳고 상대는 절대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그마입니다. 도그마를 깰 때 역사의 진보와 발전은 이루어집니다.

 이쓰키는 “용서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는 것도 인생의 모든 것을 스스로 도맡으려고 애쓰기 때문 아닐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식으로 “다 내 소관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탁 하고 놓아버리는 그의 자세가 저는 마음에 듭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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