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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철학 공부한 의사, 공동체 가치에 눈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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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승범

서울 성내동에서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가정의학 전문의 이승범(42)씨는 인문학 저자다.

그는 1998년 프랑스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가입했다. 주로 전공자들이 모여 결성한 ‘탈근대철학연구회’다.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자아실현, 겉보기에 상충하는 것 같은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속시원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답을 얻었다”고 말한다. “둘은 어차피 양립 불가능한 것이니 양손에 쥔 떡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신 그는 책을 한 권 얻었다. 지난해 출간한 『인문학적 자유 VS 과학적 자유』(우물이있는집)다. 말하자면 그는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얻은 성과를 책 출간을 통해 세상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 대중화의 한 방식이다.

 - 주로 어떤 걸 공부했나.

 “들뢰즈·라캉 등 프랑스 탈근대 철학자와 슬라보예 지젝 등을 읽었다. 요즘은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를 공부한다. 처음엔 연구자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회사원·교사 등 비전공자가 절반 정도다. 매주 수요일 읽은 책을 토론한다. 적게는 6~7명, 많을 때는 10명도 나온다. 연구회 간사를 맡고 있다.”

 -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이유는.

 “대학 시절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한데 자연과학의 언어로는 세상을 제대로 해석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한때 사회과학으로 전공을 바꿔볼까 생각도 했었다. 전문의가 된 다음에도 답을 얻고 싶었고, 마침 연구회를 알게 돼 가입했다.”

 - 나름 깊이 있는 책도 냈는데.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의학과 인문학의 소통 가능성을 따진 책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을 꾀하는 학문적 시도는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본 후 자기 생각을 강조하는 데서 끝나는 것 같다. 정작 왜 소통이 안 되는지에 대한 토론은 빠지기 십상이다. 나는 인문학(철학)과 자연과학(의학) 양쪽을 다 경험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둘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따져봤다.”

 - 책까지 낸 이유라면.

 “스스로를 과시하고 싶은 현시욕망이 없다고는 말 안 하겠다. 그간의 공부를 통해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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