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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 과태료 대납 … 관광버스, 대놓고 불법 주·정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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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소문동 한 음식점 앞 2차로에 불법 정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이보다 앞서 관광객들을 하차시킨 왼쪽 관광버스는 한 개 차로를 점령한 채 주차돼 있다. [안성식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유명 음식점 앞. 식당 앞에는 중국 관광객을 내려준 대형버스 6대가 늘어서 있었다. 이들 버스가 인도 옆 1개 차선을 완전히 막는 바람에 충정로 쪽으로 가는 고가 진입을 앞둔 차들이 급하게 차선을 바꾸느라 일대 도로가 혼잡스러웠다. 교통 경찰관이 와서 이동을 권유했지만 버스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택시운전 기사 이인이(64)씨는 “택시는 조금만 서 있어도 단속을 하는데 관광버스들은 한 시간 넘게 서 있는 경우도 많다”며 “주차단속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돼 있는데도 단속이 안 되는 걸 보면 관광버스만 봐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신발장사를 하는 최상환(28)씨는 “관광버스가 세워져 있으면 우회전하는 차가 보이지 않아 길 건너기 불편하다”며 “밤이 되면 여기(동대문 일대)는 더 복잡해지는데 그때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곳곳이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미 수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문제 제기가 됐음에도 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본지 2월 28일자 18면 등> 어떻게 이런 배짱 영업이 통하는 걸까. 본지 취재 결과 여행사와 연계한 식당과 쇼핑센터가 주차료를 대납해주는 데다 관광 수입을 의식한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단속이 합쳐진 결과였다.

 일단 서울시 측은 공영주차장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외국인 관광객을 태우고 서울시를 운행 중인 관광버스는 700대가 넘는데 기존 공영주차장은 379대 정도만 수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건 핑계였다. 식당·쇼핑센터가 과태료를 대신 내주는 게 일상화돼 있어 관광버스 기사들은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외국인 관광식당 앞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외국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몰렸다. 29대나 되는 버스는 예외 없이 도로 인도 옆 차선에 불법주차를 했다. 길 건너편에서 서울시 공무원이 단속을 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사를 마친 후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여유를 부렸다. 마포구청 이진표 주차단속팀장은 “특별 단속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며 “단속에 걸려도 식당에서 과태료를 내주기 때문에 운전기사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했다. 여행사 관계자는 “관광코스 안에 포함된 식당이나 쇼핑센터 앞 도로에서 부과받는 과태료는 다 업소 측에서 부담한다”고 말했다.

 종로구 등 일부 구청은 아예 부과된 과태료를 면제해 주고 있다. 운전기사 한모(44)씨는 “몇몇 지자체에서는 이의진술서에 관광 목적 주·정차로 쓰면 과태료를 면제해준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주차관리과 관계자는 “주차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도로변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내리는 순간에 CCTV에 찍히는 경우는 이의제기를 받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복궁 등 취재진이 확인한 곳에서 하차 후 즉시 이동하는 차량은 찾기 힘들었다.

 서울시와 대부분의 구청은 단속에 소극적이다. 서울시에 문의한 결과 지난해 1~9월까지 서울시에서 관광버스 불법주차로 과태료를 처분받은 사례는 모두 737건에 불과했다. 이 중 종로구의 과태료 부과건수는 75건. 하루에 관광버스만 600대가 몰리는 걸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서울시는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용우 주차단속팀장은 “교통 소통에 지장이 있을 경우에는 단속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소통에 지장이 없는데 단속을 강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광진흥적인 측면과 교통 소통적인 측면 모두를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2월 열린 토론회에서 “단속만 하는 소극적인 차원이 아니라 중대형 관광버스를 수용해 줄 수 있을지 (지자체가) 고민해야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주차장 확보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현재 25개소 379면인 도심권 관광버스 공영주차장을 2020년까지 37개소 569면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대 강승필(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공영주차공간을 늘리는 것과 함께 불법 주·정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병행해야 주차장도 실효성 있게 운영될 것”이라며 “프랑스 파리의 경우 정해진 곳에만 주차가 가능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재가 강해 불법 주·정차로 인한 교통 불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글=안효성 기자, 이지은·황유진 인턴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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