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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빅4 국세청장 자리, 감옥 담장 위 걷듯 아슬아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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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CJ그룹으로부터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국세청은 직원이 2만 명이다. 공무원 가운데 경찰 다음으로 많다. 국세청은 경찰의 수사권만큼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세무조사다. 이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국세청을 두려워한다. 국세청장이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과 함께 ‘빅4’로 불리는 이유다. 역대 정권은 국세청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특별 세무조사 등을 통해서다.

 국세청은 또 일반 공무원 조직과 달리 위계질서가 강하다. 한때는 부하 직원이 뇌물을 받아 간부에게 제공하는 상납 관행도 있었다. 국세청의 위세에 눌린 기업은 세무조사를 무마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탁하고 로비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국세청의 고위직은 항상 로비와 청탁의 대상이 된다. 국세청 주변에선 국세청장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자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막강한 권력이 있지만 그만큼 부패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자리라는 뜻이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도 CJ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과 관련해 “취임 초 축하인사 성격으로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1966년 재무부에서 분리해 외청으로 독립한 뒤 현 김덕중 청장까지 모두 19명의 국세청장이 탄생했다. 이 중 각종 비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이는 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명은 구속 기소돼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이른바 ‘국세청장 잔혹사’다.

 1일 검찰에 소환된 전 전 청장은 그중에서도 검찰과의 악연이 가장 질기다. 그는 국세청 개청 이래 현직 신분으로 구속된 유일한 청장이다. 그는 청장 재직 중이던 2007년 11월 부산지검에 소환됐다. 국세청 직원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현금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였다. 그는 징역 3년6월과 추징금 7900여만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0년 7월 가석방돼 출소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그는 또 검찰조사를 받았다. 전 전 청장이 이번엔 CJ그룹 측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3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에 세 번째 소환됐다.

 국세청장 잔혹사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건 전두환 정권 시절 국세청장과 안기부장 등을 지내며 실세로 불렸던 안무혁 전 청장과 그의 뒤를 이은 성용욱 전 청장이다. 이들은 96년 진행된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구속됐다. 87년 대선 전 기업들에 압력을 행사해 114억여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였다. 이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대 임채주 전 청장은 97년 대선 당시 기업들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세풍사건’에 연루돼 구속 기소됐고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 3명의 청장은 개인적 비위보다는 대선자금 등 정권 차원의 혐의였다. 그러나 이후부턴 양상이 달라졌다. 12대 안정남 전 청장은 기소되진 않았지만 청장 퇴임 직후 건교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20일 만에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포탈 의혹 등이 제기돼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이후 김대중 정권 시절 각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해외로 출국하면서 유야무야됐다. 13대 손영래 전 청장은 썬앤문그룹의 로비를 받고 추징세액을 수십억원 이상 줄여 주라는 지시를 한 혐의로 2003년 구속 기소돼 유죄를 받았다. 15대 이주성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 인수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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