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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가 안보문제 비밀? 대통령 소통 막는 과잉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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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휴가를 떠난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진을 올렸다. 해변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밤 휴가지인 경남 거제의 저도(猪島)를 떠나 청와대 관저로 돌아왔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추억 속의 저도’엔 4박5일의 휴가 중 1박2일만 머물렀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서 남은 휴가(3일 업무 복귀)를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저도에서 추억에 잠겨 있거나 청와대로 돌아오고 있었을 무렵,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에선 예기치 않았던 소란이 벌어졌다. 29일 오후 7시쯤 청와대 관계자가 찾아와 반(半)강제적인 요구를 하면서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저도로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을 절대로 기사로 쓰면 안 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안보와 관련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휴가지를 기사로 쓴 언론사가 한 달간 청와대 출입정지를 당한 사례가 있다”고 강조하며 “‘저도로 갔을 것으로 관측된다’는 휴가지 예측 기사도 안 된다”고 했다. “(휴가지 예상 기사를 쓰는 언론에)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말도 했다.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그런데 ‘출입정지’ 운운하던 이 청와대 인사가 머쓱해질 일이 이튿날(지난달 30일) 일어났다. 박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추억 속의 저도’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자신의 사진 5장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휴가지 저도를 보도하면 청와대에 출입정지시키겠다고 했으니 청와대 인사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출입정지 대상이 될 판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의 ‘과잉경호’가 빚은 이런 소극(笑劇)은 처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6월 27~30일) 때의 일이다. 청와대는 6월 29일 박 대통령의 칭화대(淸華大) 연설 일정을 경호상의 이유로 연설 전까지 보도를 막았다. 그러나 ‘칭화대 한국 유학생회’ 홈페이지 게시판엔 이미 6월 25일 학생회장 명의로 ‘박근혜 대통령 강연회 신청 결과에 대한 공지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을 놓고 청와대 경호실만 “아무도 알아선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떤 것이다.

 지난 5월 방미 때는 청와대 경호실이 미국 측에 박 대통령에 대한 경호 수준을 과거 한국 대통령보다 한 단계 격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미국은 해외 정상의 경호 수준을 3단계로 나눈다. 한국은 중간 단계의 경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걸 격상시켜달라니 미국 측은 곤란해했다. 최고 단계의 경호는 북한이나 리비아처럼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의 정상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를 매사추세츠주의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있는 별장에서 보낼 것이란 사실은 오래전에 언론에 공개됐다.

 대통령 휴가지를 기사로 쓰면 안 되네, 개탄스럽네 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사실 청와대 경호실의 과잉경호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란 말도 있다. 청와대 경호실이 ‘경호상의 이유’로 대통령 주변에 차단막을 치고, 권력기구화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이제 그런 ‘경호상의 편의’가 대통령과 참모들,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경호실은 한때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장관들의 포토라인에까지 개입했다. 대통령을 위해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무조건 대통령에게 멀찍이 떨어져 세웠다. 임명장을 받으려면 손만 뻗쳐선 곤란하고, 허리까지 90도로 숙여야 했다. ‘경호상의 이유’가 만들어낸 권위주의적인 장면이다.

 이 경호용 포토라인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애고, 장관들이 서있는 위치를 앞당겼다. 그러나 장관이 대통령을 위해하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알려왔습니다]
8월2일자 <현장에서> ‘휴가지의 안보문제 비밀? 대통령 소통 막는 과잉경호’ 관련 대통령 경호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 시 미 경호당국에 과거 대통령보다 경호 등급을 한 단계 격상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없기에, 미국 측이 곤란해 할 상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당시 미국 측은 양국 경호기관 실무협의 사항을 뛰어넘는 고속도로 통제, 중앙차로 개방 등 최상의 경호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장관들의 포토라인 설정은 경호실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소관도 의전 관련 부서입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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