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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안전사고에 격노 … 삼성엔지니어링 대표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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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건희(71·사진) 삼성전자 회장이 37일간의 일본과 유럽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 닷새 만에 삼성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를 전격 경질했다. 삼성정밀화학 공사장에서 물탱크 사고로 인명피해가 난 데 대한 일벌백계식 결단이다.

 삼성은 울산의 삼성정밀화학 공장 내 폴리실리콘 생산법인인 SMP의 신축공사장에서 발생한 물탱크 파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기석(59)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을 경질했다고 1일 밝혔다. 후임 대표에는 박중흠(59) 운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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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인사는 이 회장이 누차 강조해 온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전형이다. “안전·환경에는 타협이 없다”며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묻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안전과 환경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안전의식을 높이려는 조직문화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해 당황스럽다”며 “이번 조치는 CEO에게 책임을 물어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여기에 ‘충격요법’을 더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책임 소재를 묻는 게 통념인데 이번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이 회장은 이번 사고를 보고받은 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후진적인 환경안전사고는 근절해야 한다”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지난달 26일 울산 SMP 신축 현장에서 물탱크가 파열돼 3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15명의 사상자가 나오자 다음날인 27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유가족과 국민께 걱정을 끼쳐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자체조사를 통해 물탱크 파열의 원인이 기존 용접 공법이 아닌 볼트를 사용한 신공법의 결과였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울산 남부경찰서는 이날 SMP 사무실과 시공사인 삼성엔지니어링 사무실 2곳 등 모두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공사 계약과 허가, 부품 검수, 안전 등과 관련된 문서를 확보해 정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있다. 삼성 역시 이번 사고 원인을 면밀히 조사해 대표이사 교체 외에도 책임 있는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할 계획이다.

 박중흠 운영총괄 부사장의 대표이사 내정 또한 ‘이건희식’ 파격이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박 신임 대표는 지난달 초 삼성중공업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겨온 ‘조선해양통’이다. 김재열 경영기획총괄 사장을 비롯해 4명의 부사장이 있었지만 이들을 제치고 이적 한 달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올 상반기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어온 삼성엔지니어링을 위기에서 탈출시킬 ‘구원투수’로 중용됐는데, 현장실무와 경영 모두에 밝아 조금 앞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이번 인사와 함께 안전을 강화할 종합대책을 다시 내놨다. 우선 ‘삼성 안전관리 스탠더드’를 제정해 10월 말까지 각 계열사에 배포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관련 법규와 글로벌 기준을 분석해 외국 컨설팅 업체에 검증을 맡겨 놓은 상태다. 각 계열사는 이 스탠더드를 토대로 표준작업절차서 등을 올해 말까지 개선할 계획이다.

 삼성은 또 안전환경 분야에서 경력사원 150명, 신입사원 150명을 채용하는 기존의 계획에 5개 대학에 안전환경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더했다. 산학협력을 통해 안전환경 관련 학과의 우수학생을 키우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올 1월 반도체 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로 삼성반도체는 내년까지 화학물질 관리 개선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다른 삼성전자 계열사도 곧 투자 금액을 확정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재우·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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