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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CJ 세무조사 세 차례 요청 … 국세청이 모두 묵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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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세청이 2008~2009년 세 차례에 걸친 검찰과 경찰의 CJ그룹 세무조사와 고발 요청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CJ그룹에 특혜를 제공한 전·현직 국세청 고위 인사가 여럿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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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그룹 이재현(53·구속기소) 회장의 비자금 실체가 드러나게 된 계기는 2007년 5월 발생한 이모 전 CJ 재무팀장의 청부살인 사건이다. 검찰은 청부살인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비자금 관리내역이 담긴 이 전 팀장의 개인 USB를 복원했다. 당시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USB 내용을 확인한 검찰은 경찰에 “국세청에 이 회장이 내지 않은 세금 액수를 계산해달라고 요청하고 아울러 탈세 부분에 대한 고발을 요청하라”고 지휘했다. 5개월간 이 회장 측 가명·차명계좌 수백 개를 추적했던 경찰은 2008년 8월 공문에 ‘협조 요청’이란 제목을 달아 국세청에 자금추적 결과를 보내고 이 회장에게 물릴 세금 액수 계산을 요청했다. 탈세 부분에 대한 고발도 요구했다.

 고발 요청은 2008년에만 두 차례 이뤄졌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조치가 없자 2009년 한 차례 더 국세청에 공문을 보내 고발을 요구했다고 한다. 도합 세 번의 요청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CJ에 대한 고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발을 피한 CJ 측은 2008년 초 국세청에 탈세를 자진 신고하고 양도소득세 250억원가량을 납부했다. 이후 경찰이 120여 개의 차명계좌를 더 추적하자 세금 100억여원을 추가로 납부했다. 경찰이 국세청에 고발 요구 공문을 보낸 즈음에는 전체 양도소득세 체납을 자진 신고하고 총 1700여억원의 세금을 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CJ 측이 먼저 자진 납부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자진 신고했다고 해도 체납 세액이 크고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국세청이 알고 있었던 만큼 자진 납세와는 별도로 국세청이 조사에 나서고 탈세 행위에 대해선 고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수사기관에서 제공한 자료는 세금포탈 여부, 포탈세액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국세청에선 통보된 자료를 검토한 후 조사 착수 여부를 판단한다”고 해명했다. 국세청은 “실제 조사를 한 경우에는 조세범칙심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조세포탈 및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며 “CJ그룹 건도 이 같은 적법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말했다.

 ◆‘달러’ ‘부하’와의 악연=검찰은 전군표(59) 전 국세청장을 1일 오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전 전 청장 측과 일정을 조율해 소환을 통보했다고 31일 밝혔다. 수사팀은 전 전 청장을 상대로 국세청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여름 이재현 회장이 건넸다는 미화 30만 달러(약 3억3000만원)와 고가의 명품 시계 2점을 받았는지를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당시 법인납세국장이던 허병익(59·구속) 전 차장은 지난달 27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시계와 미화 모두 CJ가 전 전 청장의 취임 축하 명목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전 전 청장은 2007년 11월 현직 국세청장 신분으로는 처음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구속기소돼 실형을 살았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전 전 청장이 2006년 당시 정상곤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미화 1만 달러와 7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냈다. 전 전 청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최근 출소했다.

 6년 만에 새롭게 불거진 전 전 청장의 수뢰 의혹은 당시 사건과 두 가지 측면에서 비슷하다. 국세청 부하 간부를 통해 ‘상납 진술’이 나왔다는 점, 뇌물 일부가 달러로 전달됐다는 점이다. 당시 정 전 지방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건설업자에게서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받은 1억원 중 6000만원을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수뢰 액수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더 늘어났다.

 전 전 청장은 후임 한상률(60) 국세청장을 사퇴시킨 ‘그림 로비’ 사건의 로비 대상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으로 있던 2007년 초 전 청장의 부인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500만원짜리 그림 ‘학동마을’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해당 혐의에 무죄를 내렸지만 전 전 청장은 세 번이나 국세청 부하 간부의 진술로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가영·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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