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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영란법' 반쪽 만든 법무부 뭘 겁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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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결국 법무부를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일명 김영란법) 도입을 주도한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의 얘기다. 이 법은 공무원 뇌물에 대해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하는 게 핵심이다. 다만 직무관련성이 없는 뇌물에 대해선 과태료만 물리도록 해 ‘반쪽 처벌’이란 지적도 나왔다.

중앙일보 7월 31일자 1 , 4면

 지난해 8월 권익위가 낸 입법예고안엔 ‘100만원 넘는 돈을 받은 공무원은 직무관련성·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평상시 ‘관리 차원’에서 뇌물을 건네다 사건이 터지면 연락을 딱 끊고 선처를 바라는 일명 ‘스폰서’ ‘떡값’ 문화를 근절하자는 의도다. 형(刑)이나 징계를 받지 않는 한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하고 퇴직 후엔 연금도 받는 공무원에겐 높은 수준의 청렴성·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했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에서 대가성 없는 뇌물도 형사처벌하는 점을 고려했다.

 하지만 여기에 법무부가 반대 의견을 냈다. 형벌 조항이 담긴 법안을 만들 때 법무부 동의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권익위에선 법무부에 서면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가 설득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법무부는 “과잉 처벌 소지가 있다”며 “1만 명 중 1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법무부가 말한 ‘억울한 사람’은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자수성가한 재벌이 예전에 공무원으로부터 받은 작은 도움이 고마워 500만원을 건넨 경우, 먼 사촌이 결혼식 축의금으로 300만원을 보낸 사례 등까지 처벌한다면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법무부는 “형벌을 가할 땐 엄격을 가해야 한다”는 원칙을 들이댔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로 들린다. 최근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 전직 고위 공무원이 줄줄이 뇌물죄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부패지수에서 한국은 174개국 중 45위를 차지했다. 브루나이(46위)·르완다(50위)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법무부 공무원도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게다가 ‘뇌물 부장검사’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등 검찰이 뇌물죄의 당사자가 된 전례가 많다.

법무부는 엄격한 잣대로 법을 다루는 부처다. 이제는 그 잣대로 스스로를 다잡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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