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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러다간 남녀 간 로맨스도 사라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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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자친구요? 여자는 귀찮고 짜증나요.”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도 아닌, 갓 스무 살 된 남자 대학생의 대답이었다. 그 또래엔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 가슴 두근거리는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이유는 더 의외였다. “괜히 여자들이랑 어울리다 성추행에 휘말릴지도 모르고, 요즘 개념 없는 여자애들 너무 많아요.” 한 예로 여자들은 남자 몸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근육이 어떻다느니 품평을 하고, 심지어 헤드록을 걸고 때린다는 거다. 그래도 남자는 대항할 방법이 없단다. “여자애들 하는 대로 갚아줬다간 곧장 감방행일 걸요.”

 다른 젊은 친구는 요즘은 여자들이 막 나가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큰일난다는 강박관념이 있단다. 또 TV만 틀면 자칭 소녀인 걸그룹들이 떼로 나와 핫팬츠 차림에 엉덩이를 흔들고 일명 ‘쩍벌춤’을 추면서 마구 자극을 흩뿌리는데 남자들은 반응은커녕 혹시라도 자기 눈동자가 돌아갔을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게 ‘요즘 남자’로 태어난 죄라고 했다. 이들은 안전해서 남자들끼리 놀다 보니 그게 훨씬 편하단다. 요즘 드라마의 남남(男男)커플이 각광받고, 영화에서도 남녀 간 로맨스가 사라진 남자들 얘기인 ‘은밀하게 위대하게’ ‘신세계’ 같은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건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거다.

 사실 ‘요즘 남성’ 관련 소식은 좀 우울하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 남성의 삶은 팍팍하기 짝이 없다. 젊어선 취업난에 결혼도 늦어지고, 나이 들어도 계속 일해야 하고, 40대 미혼 남성은 10년 전보다 3.2배, 50대는 4.5배나 늘었다. 물리적인 남자의 삶도 점점 어려워지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투신 퍼포먼스 후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마디로 황당한 사건인데 인터넷에선 이를 계기로 남녀가 서로를 비방하는 성대결로 번져간다. 급기야 이게 여성권익을 신장시킨 여성정책의 잘못이라며 여성가족부로 비난이 쏟아지고,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 남성들의 우울한 현실이 여성정책의 잘못은 아니다. 또 이런 행동이 일부의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으로는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시대 남성들의 피로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여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표출되는 신호로도 보여 개운치 않다.

인류에 단 둘의 성(性)인 남녀가 대립해서 지구에 이로울 건 뭔가. 그동안 여성들이 추구해온 것은 모든 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평등·공평·개방·선린·우애의 정신이 실현되는, 남녀가 함께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었다. 과도기엔 혼란이 따르지만 그래도 성 간 대립과 반목으로 가는 건 소모적이다. 이젠 남성들이 표출하는 소외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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