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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 어떤 경우든 돈 받으면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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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영란

지난해 12월 부산고등법원은 항소심 공판에서 내연관계에 있던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의 대가로 벤츠 승용차를 건네받은 혐의 로 기소된 여검사 이모(3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벤츠를 받은 시점(2008년 2월)과 사건 청탁 시점(2010년 9월)이 달라 대가성이 없는 ‘사랑의 정표’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은 2심까진 뇌물 사건이 아니라 단순 불륜 스캔들로 정리됐다. 그러나 앞으론 벤츠 여검사와 같은 피의자들은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금품수수 사건 때마다 쟁점이 되곤 했던 ‘대가성’ 여부를 묻지 않고 공직자들을 처벌하게 하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안이 국무회의를 30일 통과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보고한 법안이 2년여 논란 끝에 일부 수정된 채로 첫 관문을 넘은 것이다.

 법안은 ▶공무원이나 그 가족이 직무와 관련돼 돈을 받을 경우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직무와 관련 없이 돈을 받을 경우에도 받은 돈의 2~5배에 달하는 과태료와 함께 의무적으로 징계를 받게 하고 있다.

또한 공직자가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이나 산하기관, 피감독기관 등에 자신의 가족을 특별채용하거나 수의계약을 통해 가족이 속한 기관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간 마땅한 규제법령이 없었던 공무원 가족들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정부는 법안을 8월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김영란법의 입법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어 공직사회에 미칠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국가 전체의 청렴도를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형법상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모두 입증돼야 하는데, 지금까진 돈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약한 처벌을 받거나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직무와 관련된 돈을 받으면 대가 없이 돈을 받아도 무조건 유죄가 되기 때문에 국민 법감정과 괴리되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패 예방효과가 클 것이란 관측이 다수이긴 하지만 국민권익위가 지난해 8월 입법 예고한 원안에 비해선 일부 후퇴했다는 지적도 있다.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원 이상’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하도록 했던 조항이 과태료 부과로 처벌 수위가 낮춰졌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를 형사처벌할 경우 헌법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반대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서 후퇴한 김영란법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크다”(배재정 대변인)며 지난해 8월 입법 예고된 권익위 원안을 당론으로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안준호 권익위 청렴총괄과장은 “원안대로 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실제 재판에선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라리 과태료를 많이 물리면서 징계까지 의무화하는 수정안의 효과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까진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깨끗한 공무원사회를 만든다는 건 박근혜정부의 기본 가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안이 통과되면 공무원뿐 아니라 국회의원의 처벌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오히려 후퇴하거나 본회의 통과 때까지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진·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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