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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무르시 퇴진 이후의 이집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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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이달 초 이집트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물러나고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시절의 구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바라크가 물러났던 2011년과 다르다. 그때는 소수의 친서방 자유주의자들과 도시에 사는 수많은 젊은이가 집결해 무바라크 퇴진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오늘날 바로 그 집단이 쿠데타를 지지하며 거기에 일정 부분의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집트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알제리 내전의 비극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독재 체제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터키의 케말 파샤식 체제로 귀결될 것인가.

 이들 세 선택지 중 어느 쪽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집트 사회의 기본적 권력 관계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 이다. 권력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양분하고 있다. 서구 지향의 자유주의자들은 실권이 전혀 없으며 그저 군대에 얹혀 지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2012년 대선에서 무르시의 상대가 누구였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전직 장성이며 무바라크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던 아흐메드 샤피크였다.

 무슬림형제단이나 군부 중 어느 쪽이 승리해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오늘날 이집트에는 제3의 요인, 즉 도시의 중산층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지난 2년간 항의시위를 이끌어 오면서 나름의 정통성을 획득했다. 이들 젊은 층은 권력이 아니라 진보를, 서구식으로 사는 미래를 원한다. 이집트에서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의 틀은 이들 세 집단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2011년의 혁명과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혁명을 촉발한 것은 군부독재하에서는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고 보았던 젊은 층의 감성이지만 2차적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대중의 빈곤이라는 사실이다.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은 종교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전반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무슬림형제단은 19세기 유럽 좌파 정당들과 비슷한 역할을 사실상 맡게 됐다. 이 집단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빈곤을 비롯한 긴급한 사회적 이슈에 접근하는 것밖에 없다. 이는 경제 위기(특히 젊은 층의 일자리 부족)와 대중의 빈곤 심화를 해소하는 것이 모든 해결책의 관건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랍권 모든 지역에서 민족주의는 사회를 옥죄며 협동, 관세 철폐, 경제 공동체 창설을 저해한다. 그렇지만 위기를 맞고 있는 아랍국가의 경제는 규모가 너무 작아 혼자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 서방은 이집트에서 군부, 무슬림형제단, 도시 젊은이의 3대 정치 세력 모두와 함께 일해야 한다. 최악의 접근법은 무슬림형제단과 정치적 무슬림에 고립감을 느끼게 하거나 심지어 또다시 박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시리아의 내전은 레바논과 요르단 정부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는 이와 유사한 분파주의적 폭력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이집트의 군사 쿠데타는 아랍 혁명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속아서는 안 된다. 권력 투쟁이 끝났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과거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848년 유럽 혁명은 이듬해 무효화됐지만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군주제는 그 후 수십 년간 유지됐지만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민주주의가 등장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일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랍권은 과거 유럽과 비슷한 정도의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가 평화나 안정과는 거리가 멀 것임은 분명하다.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