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러 라이브' 하정우 … 승부사 기질, 주인공이랑 똑같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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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윤영화 앵커(하정우)는 출세욕 때문에 테러범과의 통화를 생중계하는 모험을 한다. 하정우는 “지금까지의 역할 중 가장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라고 말했다. [사진 롯데 엔터테인먼트]

이 정도면 연기의 곡예라 할 만하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7월 31일 개봉, 김병우 감독)에서 배우 하정우(35)는 라디오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미세한 표정변화와 눈빛 만으로 폭 넓은 감정 연기를 소화해냈다.

그가 맡은 역은 불미스러운 일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밀려난 인기 앵커 윤영화. 그는 생방송 도중 걸려온 한 남자의 테러 예고 전화를 앵커 복귀를 위한 기회로 삼아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독점 생중계하지만, 상황은 점차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로 변해간다.

출세욕에서 출발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배신감, 상실감을 지나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공포감에까지 다다른다. 29일 만난 하정우는 “감정의 액션 영화를 찍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뉴스 앵커 역할은 처음인데, 참고한 인물이나 자료가 있다면.

 “손석희(JTBC 보도담당 사장) 앵커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생중계한 자료와 ‘백분토론’을 참고했다. 대사량이 많아 감독이 프롬프터를 준비해준다고 했는데, 외워서 하는 게 감정 표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거절했다.”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나.

 “나는 낮은 목소리 톤부터 앵커에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동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윤영화 역은 상대배우들과의 리액션 없이 혼자서 이끌어가는 배역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잘할 수 있는 것만 고르면 배우로서 성장할 수 없지 않나.”

 -윤영화와 인간 하정우가 닮은 점이 있다면.

 “윤영화는 테러범과의 전화 통화를 출세가도로 복귀하기 위한 기회라 생각하고,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덥석 문다. 그런 도전적인 태도와 호기심은 나와 닮았다. 승부사적 기질이랄까.”

 -5대의 카메라에 둘러싸여 찍는 기분은 어땠나. 연극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뉴스 속보를 진행할 때 앵커 정면에 놓인 카메라가 메인 카메라였다. 영화 속에서 방송 기자재로 보이면서 실제 촬영도 했던 거다. 스튜디오 세트 자체가 연극 무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5대의 카메라가 시시각각 변하는 윤영화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로 포착했는데, 그 다양성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 배우의 리액션 없이 혼자서 연기하느라 답답했을 것 같다.

 “나와 관객이 직접 마주 보는 영화라고 봤다. 덕분에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연기라도 이번 영화는 전화와 무전기를 통해 상대 배우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덜 답답했다. ‘황해’(2010, 나홍진 감독) 때는 혼자서 건물만 쳐다보고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감정 연기는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제한된 공간에서의 타이트한 샷이지만 그 안에서도 액션은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몇초간 흔들리는 표정,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 하다가도, 온에어 사인이 꺼지면 변화하는 모습의 낙차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다. 극중 장면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된 게 도움이 됐다.”

 -타이트한 촬영 일정이었는데 촬영 과정에서 전작들과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

 “앵커가 방송국에 출근하는 규칙적 느낌을 갖기 위해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아침 일찍 영화사 사무실로 향했다. 파주 세트 촬영 때는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좀 더 집중하는 환경과 생활 패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10월 개봉)를 연출하고 나서 처음 찍은 영화다.

 “영화를 찍어보니 나와 같이 일했던 감독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김 감독에게 주연 배우 이상으로 힘이 돼주겠다고 약속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부담스럽진 않나.

 “무섭고 부담스럽다. 대중의 기대를 흥행 성적으로 보장할 순 없지만, 쑥스럽지 않은 작품을 골라서 영화의 미학과 본질을 지키는 작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30편의 영화를 찍었어도, 31번째 영화에서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현목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지용진 기자) 올해 가장 충격적인 신인감독의 데뷔작. 긴박감 있는 연출과 주연 하정우의 연기가 환상적인 이중주를 빚어낸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하층계급의 목소리를 담아낸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그 주제를 긴박감 넘치는 장르적 쾌감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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