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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夏雨雨人[하우우인]

중앙일보

입력

의봉혈우(蟻封穴雨)란 말이 있다. 개미가 구멍을 막으면 비가 온다는 말이다. 개미는 습도에 민감하다. 따라서 기압골이 형성돼 땅의 수분 증발량이 적어지면 머지않아 비가 내릴 것임을 알아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정도가 있다. 적당한 비야 구멍을 막아 피한다고 하지만 큰비가 내릴 경우엔 역부족이다. 이때가 되면 개미는 큰 나무 밑으로 집단 이주를 한다고 한다. 요즘과 같이 장대비가 매일 쏟아지는 때야말로 개미들의 이주 시기가 아닐까 싶다.

최근 장맛비가 예사롭지 않다. 장마철에 비가 내리는 것이야 계절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 강도가 사람 마음을 불안케 할 정도로 거칠기에 하는 말이다. 장마철에 미친 듯한 바람과 함께 퍼붓는 비를 흔히 광풍폭우(狂風暴雨)라고 말한다. 대우방타(大雨滂?)는 큰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모양을 일컫는다. 표주박으로 쏟아붓는 듯한 큰비는 표발대우(瓢潑大雨)라고 말한다. 표주박 대신 대야를 사용해 마치 대야로 쏟아붓는 듯한 큰비의 경우엔 경분대우(傾盆大雨)라는 표현을 쓴다.

이 모두는 다 정도가 지나쳐 좋은 비가 되지 못한다. 때맞춰 알맞은 양의 비가 내리는 급시우(及時雨)가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급시우를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사람 마음이 간사해 어느 때가 또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잣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우기한(暑雨祁寒)이란 말이 있다. 이는 무더운 여름철 장마와 혹독한 겨울철 추위란 뜻이다. 찜통더위가 펼쳐지는 여름철이 되면 한바탕 시원한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비가 오래 계속되면 이내 불평이 쌓이게 마련이다.

한겨울의 추위 또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추위가 깊어지면 사람들의 원망이 자자해지는 법이다. 서우기한은 따라서 갈대와 같이 오락가락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다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할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하우우인(夏雨雨人)을 말한 바 있다. 이는 따사한 봄날에 사람의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는 봄바람(春風風人), 그리고 무더운 여름철 사람의 몸에 떨어지는 시원한 비처럼 곤궁에 빠진 이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말이다. 올여름엔 우리 모두 하우우인의 주인이 돼 보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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