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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 지혜의 죽음은 장모의 오해와 집착이 빚은 비극"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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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스물셋 나이에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고 하지혜 양.
김 변호사의 장모 윤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다.
하남 검단산 살해현장에서 진행된 현장검증 모습. 범인들은 숨진 하양에게 공기총을 6발이나 발사했다.

11년 전, 이른바 ‘여대생 하지혜 양 청부 살인사건’은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방의 재벌가 회장 부인이 자신의 판사 사위가 이종사촌 동생과 불륜에 빠졌다고 의심해 여대생을 납치, 살인 교사한 당시 사건은 엽기적인 살해수법에다 피해자가 미모의 여대생이라는 점, 엘리트 판사사위와 재벌가 비리 등이 중첩되면서 한 편의 통속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당시 기자는 이 사건을 추적해 진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단 한 사람,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도 지목됐던 ‘김 판사’는 입을 다문 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김씨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중앙>에 입을 열었다.

여대생 하지혜 양 청부 살인사건의 주범 윤길자 씨가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보도로 10년 만에 여론의 도마에 다시 올랐다. 재벌가 ‘사모님’ 윤씨가 유방암 수술, 당뇨병, 파킨슨증후군, 우울증 치료 등을 이유로 지난 2007년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지난해 12월까지 무려 5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 기간을 연장해온 것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산 것이다. 사람들은 ‘살인교사’라는 중죄를 지은 윤씨가 형집행정지로 출소해 병원 특실을 독차지하고 도심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윤씨의 주치의인 세브란스 병원 의사가 진단서를 가짜로 발급해주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인터넷에는 윤씨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영남제분’ 안티카페까지 생겨났다. 회사 이미지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영남제분 측이 홈페이지에 호소문을 올렸지만 들끓은 비난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7월초, ‘영남제분 사위’ 김씨가 오랜 침묵을 깨고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자청해왔다.

김현철(40) 변호사와의 만남은 지난 7월 3일 서울의 J호텔 중식당에서 이뤄졌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김 변호사는 조용하고 점잖아 보였다. 명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선입견을 뺀다면 조금은 어수룩해 보일 정도로 말도 어눌했다. 지난 10년 전에 사건은 종결됐지만 그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의문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살해된 하양의 집안으로부터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인데도, 처가와 이모부집 사이에서 어정쩡한 줄타기를 하느라 끔찍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이제 와서 입을 열 생각을 한 이유는 뭔가?
“제가 딸만 둘인데,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제 아이들이 커서 저와 관련된 얘기를 다 알게 될 텐데, ‘아빠는 돈 때문에 엄마와 결혼했고, 아빠 때문에 사촌동생이 죽고, 사촌동생하고 좋아하고 뭐 그런 일 있었어?’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그 물음에 대답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판사를 퇴직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는데, 아무래도 공직을 떠나니 내 신변이 좀 자유로워졌다.”

“사촌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년 전 그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하양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어야 했나?
“지혜의 죽음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죄책감을 안고 살고 있다. 지혜는 평생 제가 안고 가야 할 짐이다. 지혜가 저 세상 편히 가도록 천도제도 지내주었고, 받아주시든 안받아주시든 해마다 지혜 기일에는 사람을 보내어 사죄와 화해의 뜻을 전해왔다. 이제야 말하지만, 저와 지혜 사이에 불륜이니 뭐니 오해 받을 행동은 꿈에도 없었다. 제 입장에서는 처가도 버릴 수 없고, 이모부네도 외면할 수 없었다. 침묵만이 답이었다. 그동안 제게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제 운명이니 하고 다 감수하겠다고 작정했었다.”

11년 전인 2002년, 이른바 ‘명문 여대생 고 하지혜 양 공기총 청부 살인사건’은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대형 스캔들이었다. 영남제분 회장 부인인 윤길자(당시 59세) 씨는 사위 김현철(당시 29세, 판사) 씨가 대학생 하지혜(당시 22세, E대 4학년) 양과 불륜관계라고 의심했다. 윤씨는 김 판사와 하양이 만나는 증거를 찾기 위해 경찰과 심부름업체, 그리고 운전기사인 자신의 조카를 시켜 무려 2년여 동안 하양을 미행했다. 윤씨의 사주를 받은 조카 윤모(당시 41세)씨는 자신의 친구인 김모(당시 40세) 씨를 공범으로 끌어들여 새벽에 수영장에 가던 하양을 납치, 살해했다. 하양은 2002년 3월 16일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에서 온몸이 골절을 당하고 얼굴에 공기총 여섯 발을 맞고 숨진 끔찍한 상태로 발견돼 가족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하양의 아버지(당시 57세)는 무서운 집념을 발휘해 베트남까지 도피한 살해범들의 은신처를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 재벌가 사모님 윤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윤씨의 조카와 친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세 사람 모두 2004년 대법원에서 감형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초대형 스캔들이 벌어졌지만 당시 김 판사는 하양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만 불러일으켰다. 김 판사와 하양은 정말 사촌관계에 불과했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품고 있는 의문이다.

-당신과 하양은 실제 어떤 관계였나? 솔직히 말해 달라.
“이종사촌 남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혜와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방학 때면 제가 지혜 오빠와 지혜를 데리고 놀러다녔다. 지혜는 부모님 성격을 닮아 당차고 명랑했다. 밝은 아이였고, 나에게도 살갑게 대했다. 외할머니가 늘 자매들 간에 사이 좋게 지내라고 제어머니께 신신당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동생인 이모네를 잘 챙기셨다. 어머니 부탁으로 처음에는 지혜 오빠의 공부를 도와줬고, 제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는 지혜가 고등학생이어서 지혜의 과외지도를 해주었다. 지금은 재개발돼서 강남 H아파트로 바뀌었지만 이모부 집이 영동 AID아파트였다. 어머니가 기왕이면 지혜 공부를 제대로 봐주라면서 지혜 네 바로 옆 동에 13평짜리 전세를 얻어주어 연수원 내내 거기서 지냈다. 그 정도면 알만하지 않나!

지혜와 나하고는 나이도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난다. 지혜가 나를 이성으로 좋아했을 리도 만무하다. 제가 어렸을 때 형보다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여리고, 모든 게 형보다 모자라 보였다. 그런데도 S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니 이모부네도 저를 보고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하고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지혜는 원래 외교관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저를 보고 변호사로 꿈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어느 날 이모네 쪽에서 ‘지혜가 법대 공부하면 현철이 네가 도와줄 거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한 적이 있다. 지혜 과외지도를 정성껏 해주었고, 다행히 지혜가 E대 법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모가 오해할 만한 정황 있었다”
-단순히 이종사촌 사이일 뿐인데, 장모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할 수 있나? 혹시 당신이 장모에게 트집 잡힐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그때 경찰이 다 수사했지만 제 주위에 다른 여자는 없었다. 다만 이런 일이 있기는 했다. 한번은 장모가 제 옆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지혜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지혜가 ‘오빠, 결혼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내 공부 봐줄 거야?’ 하고 물어서 제가 별 생각 없이 ‘그래, 해줘야지’ 하고 대답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장모가 그 일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도 같다. 그러고 나서 2000년 4월쯤인가 장모가 갑자기 지혜 얘기를 했다. ‘김 서방, 혹시 나 몰래 사촌동생 만나고 다니는 것 아니야?’ 하고 물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라고 했다. 당시 장모의 심리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의부증도 있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하면, 장모는 당신의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니까 그 반대급부로 어린 딸과 사위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저도 어려서 그런 깊은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때 오해의 빌미를 주기 싫어서 휴대폰에 지혜네 집 전화번호도 지우고 이모네 집에 발길을 뚝 끊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사위가 어떻게 사촌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장모 윤씨의 심리상태를 의심했다. 윤씨가 그런 오해를 하기까지는 그래도 뭔가 그럴만한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
“2000년 1월에 제 연수원 수료식을 축하해주러 고향에서 부모님이 수료식 하루 전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그런데 아내가 피곤하다며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장모님 계신 청담동으로 가버리고 부모님은 지혜네 집에 가게 되어 제가 기분이 좀 나빴었다. 다음날 수료식에 지혜네 가족도 다 와서 축하해주었는데, 끝나고 중식당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하게 됐다. 아내가 샥스핀 찜을 덜어주어서 제가 ‘됐다’고 거절했다. 제 딴에는 기분이 좀 나쁘다는 것을 아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데, 그때 지혜가 눈치 없이 ‘오빠 먹어’ 하고 음식을 제게 덜어주었다. 그 아이가 원래 그렇게 좀 살가운 행동을 하는데, 내가 별 생각 없이 지혜에게 ‘알았어! 먹을게!’ 그랬다. 자기 처가 주는 것은 안 먹고, 지혜가 주는 것은 먹겠다고 했으니 장모가 그때 의심의 눈초리로 봤을 법도 하다.”

피해자인 하양 가족은 당시 김 판사가 장모에게 별다른 항변도 못하고 장모의 기세에 눌려 살았던 데는 ‘돈만 아는’ 재력가 집안에 김 판사가 ‘팔려간’ 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세간에서는 김 판사의 결혼을 두고 당시 영남제분 회장 부인인 윤씨가 7억원을 주고 판사사위를 돈으로 샀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김 변호사의 솔직한 심경은 무엇일까?

“제 결혼을 두고 ‘판사사위를 돈으로 샀다’느니 ‘제 집안에서 결혼대가로 7억원을 받았다’느니 하고 말이 많은데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때 장모가 서울 동부이촌동에 2억300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줬지만 등기도 아내 이름으로 했고, 그것도 3개월 뒤에 장모가 팔았다. 다만 결혼할 때 예단과 예물비용으로 3억원을 받았다가 1억원을 신부 예단비용으로 돌려주기는 했다. 돈을 받은 게 있다면 그 2억원뿐이다. 저도 어릴 때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아버지가 마산에서 개원의로 계셨으니 제가 돈보고 결혼한 것도 아니다. 제 형도 지금 의사로 있다. 제가 매매혼으로 팔려갔다고 하는데, 잘못된 얘기다.”

-장모 윤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당시 장모 때문에 신혼 초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던데.
“장모가 청담동에 사셨는데, 제 근무처인 서부지원과 가까운 동부이촌동 신혼집에 날마다 오셨다. 퇴근해서 ‘어떻게 오셨냐?’ 여쭈면 ‘신혼살림 정리해주러 왔다’ 그러는 거다. 장모 때문에 야근도 못하고 칼퇴근 하느라 판사 1년차 때 제 근무 평점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 무렵에 장모가 저녁 먹고 나면 이러쿵저러쿵 제게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했다. 심할 때는 새벽 1~2시까지 저를 붙잡고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며 당신 가족들 얘기며 제게 온갖 얘기를 하곤 했다. 처음 당신이 맞은 사위가 듬직하고 좋았는지 많은 애정을 쏟으셨지만 그게 저한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여러 번 싫은 티를 냈는데도 들은 척도 안했다.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해 장모가 살던 청담동 S빌라에서 같이 살던 때는 더 심해졌다. 저로서는 독립된 가정을 원했는데, 장모가 사사건건 간섭하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스트레스 때문에 처가에서 나오려고 부모님께 2억원 빌려서 영동대교 인근에 아파트 전세를 얻은 적도 있다.”

“장모가 불륜 의심” 이모집에 알린 것 후회
판사사위 김씨에 대한 장모의 비정상적인 집착은 이후 엄청난 불행을 불러왔다. 윤씨는 사위와 딸에게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사전에 다 제거하겠다는 듯 횡포를 휘둘렀다. 하양이 사위와 만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미행을 붙인 것이다. 이 미행 문제와 관련해 숨진 하양 집안에서는 장모 윤씨보다 김 변호사에게 깊은 불만을 가져왔다. 지혜 양과의 관계에 대해 김 변호사가 장모에게 확실하게 해명하지 못해 비극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숨진 하양 집안에서는 김 변호사가 지혜 양와의 관계에 대해 장모에게 시인도 부인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비극을 불러왔다고 비판해왔다.

-장모가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으면 해결하려고 더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막으려고 무진 노력했다. 장모가 지혜를 미행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저도 경악했다. 사실 몇 번이나 장모를 붙잡고 말렸는지 모른다. 장모에게 ‘차라리 저를 미행하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장모가 제 3자를 시켜 저를 미행한 적도 있다. 2001년 3월 말에는 근무하던 서부지원 건물 안에서 난데없이 장모와 부딪쳤다. 장모가 ‘사촌여동생이 여기 안 왔느냐? 내 눈으로 직접 (지혜를) 봤다. 너 때문에 놓쳤다’고 말했다. 지혜가 그날 법원에 오지도 않았고, 만난 적도 없는데,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겁이 나더라. 이러다가 장모가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이모집에 알리고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께 전화해서 지혜네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장모가 이상하다. 장모가 나하고 지혜관계를 의심한다. 그러니 뭔가 이 문제에 대해 대응할 것 있으면 저하고 미리 상의하시라’고 이모에게 전화로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이모네 집에서 난리가 났다."

-두 집안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나?
“3월 29일, 두 집안이 크게 다툰 문제의 그날이다. 그날 장모가 이모집에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당신 딸이 사위가 퇴근할 무렵에 사위 사무실 복도에서 나와 마주쳤다가 달아났다. 딸 단속을 잘하라’고 말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꼬였다. 그날 밤, 잔뜩 화가 난 이모네 집 식구들이 제가 있던 청담동 장모집에 들이닥쳤다. 장모는 ‘당신 딸 잘 지켜라’고 이모부에게 큰소리쳤고, 이모부는 장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몸싸움도 벌어졌다. 장모가 ‘이 사람들 신고하겠다’고 전화기를 들었다가 이모부에게 빼앗기고 그런 난리통이 없었다. 제가 양쪽을 겨우 떼어 말려서 이모부네를 집 밖으로 내보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하고 상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이모부네는 지금도 그때 제가 ‘아무 말 안
했다. 현철이가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는데, 사실과 다르다. 그때는 어떻게든 사태를 해결해보려고 전화한 건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못한 것 같다. 장모든, 이모부든 뭐든 끝을 보는 성미인데 그 일로 양쪽 다 불이 붙었다.”

김 변호사는 그날이 지혜 양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라고 했다. 그 1년 뒤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지혜 양의 아버지 하씨는 이후 장모 윤씨가 지혜 양에게 접근 못하도록 서울서 부지검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윤씨를 고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지혜 양에 대한 미행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장모의 성화에 조카가 사채업자인 친구를 끌어들여 납치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하양의 아버지가 낸 고소장에는 ‘피고소인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고소인의 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위협감을 감당할 수 없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예방해야겠다는 절실한 심정에서 고소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있다. 마치 하양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듯 섬뜩한 대목이다.

“장모가 그렇게 된 데는 내 잘못도 있다”
-장모 윤씨는 대법원에서까지 살인교사 혐의가 인정된 무기징역수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반성하고 있나?
“지금도 장모는 당신이 살인을 사주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조카 윤 씨와 공범이 우발적으로 벌인 사고라는 주장을 한다. 제가 너무나 화가 나서 장모에게 ‘장모님이 살인한 거나 다름 없다. 법적으로도 승소가 어렵다. 깨끗이 죄를 인정하시라’고 고함친 적도 있다. 지금은 장모도 많이 힘든지 병원에 누워계셨을 때 찾아 뵀더니 ‘차라리 누가 나 죽여줬으면 좋겠어!’ 하고 우시더라. 인간적으로는 장모가 가엾기도 하다. 나중에 장모가 구속된 뒤에 저와 지혜 사이를 의심한 것을 두고 ‘김 서방, 나 때문에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긴 하셨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장모가 그렇게 된 데는 내 잘못도 있다. 신혼 초에 ‘장모가 정서적으로 내게 의지하고 싶어서 그렇게 제게 집착했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장모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면, 그래서 지혜에 대한 의심을 확실히 풀어드렸더라면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때는 장모가 저와 지혜의 사이를 터무니 없이 의심만 한다고 생각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로 병원에서 호화생활을 했다는 의혹을 산 윤씨에 대한 형집행정지 결정은 5월 21일 취소됐다. 윤씨는 현재 교도소에 재수감됐다. 하씨 가족은 윤씨가 거짓환자 행세를 하며 세브란스병원 등 병실에서 지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윤씨의 형집행정지를 도운 혐의로 주치의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모 교수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윤씨에 대한 허위 진단서 작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7월 9일 윤씨의 남편이 운영 중인 회사인 영남제분을 압수수색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윤씨의 형집행정지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병원에서 호화특실을 사용했다는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 1인실에서 보냈다. 현실적으로 누가 장모 같은 무기수와 같은 병실을 쓰려고 하겠는가! 장모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도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서울서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역 법원에 근무하며 잘나가던 김 판사는 예상치 못한 청부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법원 당국의 견제를 받아 목포, 울산, 여주 등 지방의 지원급 재판부를 전전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대형 스캔들에 휘말렸으니 김 변호사 인생도 참 파란만장한 것 같다.
“뜻하지 않게 통속드라마 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저도 원인제공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난과 모욕은 다 감수하려고 했다. 한때 누군가에게 테러 당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공황장애가 와서 응급실로 실려가 1주일간 입원한 적도 있다. 딸을 잃은 비통한 마음에 이모부 집안에서 저나 제 부모에게 한탄도 하고, 술 드시고 격한 마음에 제게 욕설도 퍼부었지만 제 불찰이다 여겨서 다 감수해왔다. 이모부는 저 보고 이혼해서 처가집안과 같이 싸우자고도 했지만 아무리 장모가 범죄자이고 밉다고 아내와 자식을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002년에 회사 문제로 장인어른이 구속되고, 장모님도 구속되면서 아내는 고아가 됐다. 그때 제가 이혼하겠다고 아내를 버린다면 천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추장스런 처가를 떠나 이혼하면 제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내 고통은 제가 감수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장모 문제로 아내를 버릴 수는 없지 않나”
1973년 소띠생인 김 변호사는 큰 눈을 껌벅거리며, 3시간여 동안 자신의 심경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꾹꾹 눌러놓았던 가슴속 언어들을 삭혀 토해내느라 힘든지 중간중간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문득 그와 함께 살아온 김 변호사의 아내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변호사의 아내도 지난 세월 동안 고통이 컸을 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측은하다. 저는 장모라서 욕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아내는 자기 엄마라서 무슨 말 한마디 못한다. 그래도 작년에 법원에서 퇴임식할 때, 그리고 변호사 개업할 때 사람 들 앞에서 ‘판사의 아내’가 아니라 ‘살인범의 딸’이라는 수군거림에 시달릴 수 있는데도 와주어서 고마웠다. 아내 입장에서는 엄마 때문에 너무나 황당한 일을 겪었으니 원망도 컸을 거다. 아내가 부산에 살 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던 큰아이 학교에서 ‘영남제분 딸’ 어쩌고 하는 소리를 아내가 들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 빨리 이사 가자’ 고 울먹여서 급히 이사한 적도 있다. 아내나 저나 그렇게 10년을 마음 졸이면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2004년 2월에 장모님 항소심 재판 선고가 있었다. 아내도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저도 많이 힘들었다. 제가 목포에서 근무할 때인데,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어서 아내에게 뭘 해주지도 못했다. 아내가 그때 부산의 한 병원에서 둘째 딸을 조산했다. 임신 7개월 만에 딸이 태어났다. 그 아이가 장애가 있어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목포에서 KTX 타고 부산에 달려갔더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을 뻔했다’고 말하더라. 첫아이 때는 그래도 제가 아내 곁에 있어주었는데, 둘째 아이는 탯줄도 잘라주지 못했다. 그게 미안해서 지금까지 딸아이 출생확인서를 가지고 다닌다.” (그는 결혼 이후 부적처럼 항상 지니고 다닌다며 자신의 지갑에서 아내의 대학시절 모습이 담긴 손톱크기의 명함판 사진과 자신의 가족사진, 그리고 둘째딸의 출생확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날 3시간 동안 털어놓은 김 변호사의 복잡한 심사와 격정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인사건의 주범 윤씨가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참회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가해자의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억울하게 죽은 하지혜 양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고, 가족들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권일 기자 naf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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