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케네디가의 부심|국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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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횃불은 우리 세대에 넘겨졌다』-. 서설에 묻힌 35대 대통령 취임연단에선 「존·F·케네디」의 목소리는 정월의 찬바람에 떨렸다.
좁은 이마를 덮은 까만 더벅머리는 옆에 앉은 백발의 「아이크」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70세 「최고령」대통령의 쇠잔한 손에 힘겹던 미국의 횃불이 43세의 「최연소」대통령의 손에 넘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케네디」가 거머쥔 횃불은 최고의 영광과 최악의 비극을 몰아치며 60년대 마지막 캘린더를 떼지 못한 채 케네디가의 총수 「조셉」옹이 숨짐으로써 또 하나의 횃불은 사그라졌다.
『미국엔 계급이 없다. 다만 「더·케네디즈(케네디가)와 디·아메리컨(미국민)이 있을 뿐이다.』
미국민의 시샘이 그에 이를 만큼 「케네디」가의 영광은 신화적이었다.
백만장자에 주영대사까지 지낸 「조셉」옹에게 「하버드」대학은 끝내 명예학위를 주지 않았으나 장남 「조」는 그곳에 입학, 발군의 성적을 나타냈다.
그러나 B-24기를 타고 독일 -2기지를 때리던 「조」는 도버 해협 상공에서 산화해 버렸다.
바통은 차남 재크(JFK)에게 넘겨졌다. 「하버드」대학을 갓나오자 「소로몬」도의 PT정장으로, INS기자로 활약하던 그는 『새 세대에 새 기수』란 「슬로건」을 내걸고 하원에 나섰다.
거센 보수주의를 거스르는 자유주의의 물결-그 틈바구니에서 JFK의 정치노선은 현실주의를 택했다. 52년 그는 「헨리·캐보트·로지」의 아성에 도전함으로써 정치적 꿈을 상원에 걸었다.
케네디가의 형제들이 벌떼같이 뭉쳐 JFK를 밀었고, 특히 「케네디」의 딸들은 수많은 다과회 공세로 표를 모았다.
『천하의 「로지」가 7만5천잔의 「케네디」다에 수장되다니』라면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켤 만큼-. JFK의 백악관 진주계획은 4년 앞당겨질 뻔했다. 「스티븐슨」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에서 미끄러지면서 「케네디」에게 60년대는 시작됐다.
60년 봄의 미국은 거대한 잡파선과 같았다. 「아이크-흐루시초프」정상회담은 깨지고 U-2기는 떨어지고, 쿠바는 카스트로에게 넘어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뉴·프런티어」정시을 내건 「케네디」는 그 「핸섬」한 젊은 「이미지」로 「미국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동생 「보브」를 정점으로 한 「하버드」두뇌 팀은 정적 「험프리」가 유세버스로 먼지를 일으키고 있을 때 자가용 「제트」기로, 「칼라·텔리비젼」으로 전자화된 물량작전을 펴 미국정치의 판도를 뒤엎어 놓았다. 특히 1억2천만 명의 눈이 지켜본 TV대결에서 광고효과까지 동원한 「케네디」는 「닉슨」에게 결정타를 안기고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짧은 34개월의 재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NATO다수 핵군 창설로 안보를, 「케네디·라운드」로 국제취지를 조정하면서 미국중심의 대서양체제를 짰다.
냉전 최대의 위기였던 「쿠바」사태를 유연과 결단으로 수습한 「케네디」는 공존과 대결의 불연속선 속에서나마 섬광과도 같았던 KK공존시대의 주역이 됐다. 그러나 그의 『내키지 않았던 운명의 여로』-「댈러스」행은 미국의 꿈을 앗아갔다. 63년11월22일 케네디는 영광의 정상에서 45세의 젊음을 꺾었다.
『「조」가 죽자 내가 나섰고, 내가 불행해지면 보비가, 그리곤 테드가-』횃불은 이어졌다.
보비는 아명을 벗고 「보브·케네디」로 6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JFK의 후광이 식기 전에 횃불을 올리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또다시』 「뉴스위크」지의 타이틀처럼 비극은 왔다. 68년6월 보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선승리의 축배를 든 채 쓰러졌다. 불란서 상공에서 사라진 「캐더린」여사를 포함하면 4명이 비명에 갔다. 64년 항공사고로 여섯 군데의 척추와 두대의 갈비뼈가 부러졌던 마지막 기수 「테드」(상원 원내부총무)마저 상처투성이로 늪 속을 헤매고 있다.
미모의 여비서 「코페크니」의 목숨을 잃게 한 「차파퀴딕」사건은 「테드」의 정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또한 「케네디」가의 뒤안길엔 『재클린·스토리』가 세기의 화제로 피어올랐다. 「테드」의 악운과 영욕이 범벅된 「재키·오나시스」의 화제가 고작인 「케네디」가의 영광은 되살아날 것인지. 하지만 집념의 「하이애니스포트」엔 27명이나 되는 「케네디」가의 자녀들이 새 횃불을 지피고 있다. <최규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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