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개성공단, 정부 아닌 기업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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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논설주간

답답한 사람들이다.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 북한 대표단은 어제 오후 일방적으로 남쪽을 비난하며 개성공단 재개 협상 문건들을 공개했다. 당분간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북 사이의 남아 있는 마지막 숨구멍마저 틀어막아버리려는 걸까.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27일)은 휴전협정에 서명한 정전(停戰) 60주년. 북한은 ‘전승절’이란 이름을 붙여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대결 분위기를 한껏 고취해야 할 시점에 협상이 무어냐고 가로막는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다음 달에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이 예정돼 있다. 한·미 군사훈련을 핑계로 이번 사단을 일으켰으니 그 기간 동안은 문을 닫아걸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 계산이라면 한 달 정도 냉각기를 가진 뒤 슬금슬금 실마리를 풀어갈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봐도 공단을 처음 개설했을 때 기대했던 모습으로 만들어 가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개성공단에 대한 남북 당국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 간단히 말하면 남쪽은 국제적 기준에 맞추자는 것이고, 북한은 ‘내 땅에서 장사하려면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남쪽은 북쪽에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겠다고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수시로 공장을 세웠다 돌렸다 하면 판로가 다 끊겨 버린다. 배급제로 나눠주는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공장이 버텨낼 리가 없다. 더군다나 언제든 ‘설비는 두고 나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라면 투자할 기업인은 없다.

 북쪽은 남쪽이 “개성공업지구의 안정적 운영에 저해되는 일체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행위”를 하지 않으면 보장하겠다고 한다. 개성공단을 정말 한·미 군사훈련을 막는 수단으로 써먹자는 건지, 개성공단을 폐쇄할 구실을 찾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남남갈등을 조장해 보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훈련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2000년 개성공단 설립에 합의한 이후에도 매년 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훈련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위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군부의 입김이 너무 커진 탓일까. 혹시라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아버지와 다른 노선을 걷는 것이라면 암담해진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승계 직후 많은 기대를 받았었다. 유럽 유학의 경험이 있으니 경제 개혁을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추측들이었다. 그러나 개성공단만 놓고 보면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는 셈이다.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당장 배가 고프다고 종자에 손을 대면 이듬해에는 가족들이 더 큰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부 투자 없이는 경제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다. 더 많은 공단을 만들 씨앗이기도 하다. 이걸 잘 살리지 못하면 돈도 잃고, 신뢰도 잃고, 해외 투자자들마저 쫓아내게 된다.

 투자는 기업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해 투자를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 체제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문제는 정부보다 기업을 보고 풀어 가야 한다. 언제 몰수당할지도 모르는 곳에 돈을 집어넣는 기업인은 없다. 국내의 큰 기업이나 해외 기업들이 북한 투자를 피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현대라는 재벌이 대북 투자로 망가지고, 개성공단이 정치적 이유로 문을 닫는 사태를 보면서 북한에 대한 신뢰나 투자 의욕이 생길 리 없다. 개성공단 투자에 대한 보장 조치는 남쪽 정부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수단이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설치로 군사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남쪽은 유사시에도 남쪽 근로자들이 개성에 머물게 해야 한다. 인질을 맡겨놓는 것과 다름없는 부담이다. 남쪽이 먼저 도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기도 하다. 북한이 안보 불안을 느낀다면 개성에 군부대를 재배치할 게 아니라 해외 다른 나라에서도 투자를 끌어들여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설치할 일이다.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은 밖에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의 국경에서 군사적 도발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경계할 것은 먹고사는 내부 문제다. 아무리 촘촘하게 통제 체제를 짜놔도 배고픈 데는 장사가 없다. 어떻게든 경제적 활로를 찾는 게 선결 과제다.

 조금은 냉각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군사적 이해가 걸린다면 대표의 격을 좀 더 높여야 할 수도 있다. 어떻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부수기는 쉬워도 다시 만드는 건 처음 만들 때보다 더 어렵다.

김진국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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