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포장한 이들이 돌아가고 남은 건 폭력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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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울산 지역 4개 일간지에 대문짝만 한 광고가 일제히 실렸다. ‘소위 희망버스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울산시의 입장’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성명서 형태의 광고다. 닷새 전인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벌어진 폭력시위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앙일보 7월 23일자 16면

 어휘도 자극적이다. ‘무너진 철제 담장’ ‘살의를 담은 죽봉’ ‘저주의 쇠파이프’ 등 당시 살벌했던 시위 현장을 생생히 표현했다. 특히 ‘울산에 희망버스는 필요 없습니다. 희망버스 행태는 명백한 테러 행위’라는 문구에서 비판의 수위는 절정에 달했다. 광고 맨 아래쪽에는 게시자의 이름이 적혔다. ‘2013년 7월 25일 울산광역시장 박맹우’.

광역단체장 3선을 한 박맹우 울산시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폭력은 결코 노사문제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노사 문제와 관련된 ‘무력 충돌’이 한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2011년 부산에서는 이번처럼 ‘희망버스’란 이름 아래 일어난 한진중공업 사태가 있었다. 2009년에는 쌍용차 노조의 경기도 평택공장 공장 점거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 자치단체장들의 공식 입장 발표는 없었다. 언론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개입했다가 노사 양측으로부터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어서다. 이번처럼 드러내놓고 비판한 경우는 박맹우(62) 시장이 처음이다.

 그가 지역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를 광고까지 내면서 비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자의 도시’라는 울산의 시장이 자칫 근로자(노조)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광고를 실은 까닭이 궁금했다. 그래서 광고가 나온 바로 그날, 울산시청 시장 집무실로 박 시장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답은 단호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폭력은 안 됩니다.” 그러면서 광고를 낸 경위를 소상히 설명했다.

 “시위 사태가 울산에 남긴 것을 보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이들이 돌아가고 남은 것은 폭력의 흔적뿐이다. 죽봉과 쇠파이프가 등장하고, 소화기 분말가루가 일대를 뒤덮었다. 다친 사람도 속출했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 같은 장면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전국에 생생히 전달됐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무법천지였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린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울산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아무런 의사 표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는 ‘조용히 있어도 될 일’이라고 했지만, 울산에서 누군가는 이번 사태를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시장의 말처럼 당일의 사태는 울산에 상처를 남겼다. ‘희망버스’란 이름 아래 전국에서 모여든 3000여 명의 시위대는 현대차 울산공장 펜스를 뜯어내며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는 죽봉을 휘둘렀다. 현대차 보안요원들은 시위대를 막기 위해 물대포와 분말식 소화기를 쏴댔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이 다쳤다. 박 시장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칫 단어의 평화로운 의미에만 사로잡혀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용인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길까 봐서”라고 했다. 그는 또 “희망버스라는 말이 참 난센스다. 결국 이번 사태를 보면 준비된 폭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난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시위대가 죽봉을 휘두르고 있다. [뉴시스]

 박 시장은 “폭력이라는 불법을 저지르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내세우는 모습은 결코 상식적이라 볼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대법원…”이라는 것은 2010년의 일을 말한다. 당시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 하청 해고 노동자인 최병승씨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시위대는 이를 근거로 현대차에서 근무 중인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병승씨는 같은 주장을 펼치며 현대차 울산공장 내 철탑에서 9개월 넘게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고용 형태와 시기를 두고 노사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20일의 시위 뒤에는 이런 배경이 서려 있다.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광고를 선택했나.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울산시의 입장이 노조 또는 회사 중 한쪽으로 치우쳐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언론사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편집 과정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는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가감 없이.”

 -광고 문구가 좀 자극적이다. 강한 비판 의지를 담으려고 했나.

 “모든 문구를 내가 작성했다. 울산시장 이름으로 입장을 밝히면서 누구에게 대신 시킬 수가 있겠는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는 ‘박맹우 스타일’대로 광고 글을 만들었다. 실제 ‘문장을 보니 딱 박맹우 스타일’이라는 얘기가 좀 들린다. 사실 다 쓴 뒤에 직원들이 조금 다듬기는 했다.”

 박 시장이 신문 광고를 낸 이날, 울산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박 시장을 비판했다. 노사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참가자들의 일부 분노에 대해서만 엄포를 놨다는 것이다.

 -노조를 겨냥한 광고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자칫 중립성을 잃었다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는데.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폭력 사태에 가담한 이들(노조)도 울산시민이고, 이들과 맞붙은 현대차도 울산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한쪽을 겨냥한 광고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대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 세력을 비판하려는 광고였을 뿐이다. 노사 문제는 노조와 회사 측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다. 제3자들이 울산에 몰려와 폭력 사태를 일으킨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

 -제3자가 누구인가.

 “노사 갈등에서 노조와 회사 측을 제외하면 모두 제3자 아닌가. 특히 이번 집회 참가자들을 보면 울산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와서 주장을 펴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평화적으로 한다면 왜 말리겠나. 하지만 결국 폭력 사태로 끝나고 말았다.”

 -시위를 벌인 측이 다시 울산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단호히 거부한다. 폭력 사태를 일으킨 이들이 또 울산을 혼란스럽게 만들까 봐 걱정된다. 시민들도 폭력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성숙한 노사 문화가 필요한 때다. 폭력은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울산은 노조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이곳에서 2002년부터 시장직을 맡고 있는데 노사 갈등이 부담스럽지는 않나.

 “사실 노사 갈등은 울산의 딜레마다. 울산에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이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된 이들이 근로자다. 땀 흘려 노력하는 한편으로 활발한 노조 활동을 통해 복지와 권리를 향상시켜 왔다. 울산의 소득 수준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근로자의 땀을 통해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됐는데, 일부 폭력적인 노조 활동이 울산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노사 분규가 끊이질 않는 도시에 섣불리 공장을 짓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 계획을 접은 외국 기업도 있다.”

 박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노사 갈등에 따른 울산 기업의 경쟁력 약화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를 예로 들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3대 도시로 꼽힐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몰락한 도시가 됐다(디트로이트는 185억 달러에 이르는 빚을 갚지 못해 일주일 전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자동차 생산기업들의 경영 악화와 노사 갈등이 결국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이들 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가 기업과 함께 망해버렸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극심한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 울산이 ‘한국판 디트로이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산업 기반을 흔드는 폭력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임기가 1년도 채 안 남았다. 국회의원 출마설도 들린다. 울산의 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할 계획이 있나.

 “일단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퇴임 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세우지 않은 상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울산과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 (선거가) 임박하면 계획을 세워야지….”

 박 시장은 3선 시장이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폐수가 흘렀던 울산 태화강을 연어가 뛰노는 생태하천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그런 박 시장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태화강을 살리는 게 쉬울까, 현대차 노사 갈등을 해결하는 게 쉬울까.’

 박 시장의 대답 속에 고민이 묻어났다. “태화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노사 갈등은 행정기관으로서 손쓸 방법이 없더라. 참 어렵지만 누군가가 어떻게든 풀어야 할 숙제다. 노사 갈등만 해결되면 울산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깝다.”

울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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