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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밤새 춤추는 곳 정말 춤만 추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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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딸이 “클럽 다녀올 테니 먼저 주무시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흔쾌히 허락하시나요, 아니면 무조건 막으시나요. 클럽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부모용 클럽 사용설명서를 말입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단어들은 다음소프트가 최근 1년간 트위터에서 찾아낸 클럽의 연관어입니다. 음악·노래·사진·친구·파티·여자…. 글자 크기가 클수록 자주 언급된 단어입니다. [커버스토리]

클럽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밤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혹시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정말 같이 간 친구끼리 춤만 출까요. 그래서 직접 가봤습니다. 시간대별로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알려드리려고요. 물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즐기기는 합니다. 클럽을 찾는 목적도 물론 다들 다르겠지요.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략 이와 같습니다. 판단은 여러분 몫입니다. 클럽에 가겠다는 자녀를 말려야 할지 말지 말입니다. 아니, 말릴 수 없다면 최소한 대화라도 통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12일 금요일 자정~13일 토요일 새벽 강남구 청담동 클럽 앤써. 발디딜 틈 없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DJ의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있다. 이날은 서울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졌지만 클러버들은 아랑곳 않고 1500여 명이나 이곳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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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줄. 12일 오후 10시 45분

강남구 청담동 영동대교 남단 부근 한 건물 앞에 남녀 5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서울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우산 속 얼굴 어디에서도 불쾌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뭔가 기대감에 차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이 요즘 제일 잘나가는 클럽 중 하나인 앤써(Answer) 앞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 긴 줄은 꼭 이날만이 아니라 금요일 밤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입장료(3만원)를 면제받는 밤 12시 이전에 들어가려고 이렇게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줄을 서는 것이다.

 클럽 직원은 “밤 12시 전에 온다고 무조건 무료 입장을 시켜주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때론 ‘입뻰’의 굴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입뻰은 ‘입장을 뻰찌 맞았다(거부당했다)’라는 뜻의 클러버(클럽 이용자) 은어다. 이 관계자는 “너무 두드러지는 힙합바지나 너무 짧은 스포츠 머리, 운동복이나 슬리퍼 차림이면 입장을 막는다”고 했다. 입구 직원 보기에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는 등 클럽 이미지와 안 맞아도 입장시키지 않는다.

예거밤 마시고 워밍업. 오후 10시 45분~자정

클럽 안에 들어서니 쿵쾅거리는 일렉트릭 사운드로 가득했다. 1층 정면의 무대 뒤편 DJ박스에서는 DJ가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빛깔 레이저 광선이 눈을 자극했다.

 클럽은 1, 2층이었다. 1층은 테이블 구역과 무대, 바(Bar)로 나뉘어 있었다. 벌써 테이블 30여 개 중 절반이 차 있었다. 테이블엔 아무나 앉는 게 아니다. 한 병에 최소 30만원이 넘는 양주를 2병 이상 주문해야 하는 게 이곳의 불문율이다. 클럽 직원은 “기본 안주에 이것저것 더하면 최소 60만원은 간단하게 넘는다”며 “VIP존인 2층 테이블은 여기에 20만원이 더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값이 만만치 않은데도 자리 경쟁이 워낙 치열해 때론 경매처럼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테이블이 돌아가기도 한다. 예컨대 1층 테이블 예약 기준이 원래의 양주 2병에서 3병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2층에 있는 룸에 들어가려면 최소 150만원은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이날 테이블과 룸은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클럽에서 만난 이모(29)씨는 “클럽에서 테이블이나 룸은 일종의 권력”이라고 말했다. “테이블만 확보하면 마음에 드는 여성과 술 한잔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에서 오래 춤춰 피곤한 차에 누가 앉을 자리를 권하면 웬만하면 응하게 되는 거다.

 테이블엔 대부분 독일 술 예거 마이스터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박모(25)씨는 “얼음을 채워 넣은 유리컵에 예거 마이스터와 에너지 드링크를 일대일로 넣은 ‘예거밤’이 요즘 클럽에서 가장 뜨는 술”이라고 했다. 그는 “각성 효과가 커서 피곤한 줄 모르고 밤새 놀 수 있기 때문에 클럽에 도착하자마자 이것부터 마신다”고 했다.

예거밤은 영화 ‘행 오버’(2009년)에 등장한 뒤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는 2010년께 유학생을 중심으로 도입된 뒤 급속도로 확산됐다. 예거 마이스터는 지난해 한국에서 65만 병을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3배 늘어난 수치다. 이 밖에 크렌베리 보드카도 클럽에서 인기 많은 주류다. 특히 여성들이 달콤한 맛을 좋아해 ‘원샷’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인기 DJ 나오자 분위기 후끈. 자정~오전 2시

자정이 넘자 클럽 안은 훨씬 북적였다. 한 테이블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클럽 직원은 “한 병에 60만원인 샴페인 돔 페리뇽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얼음박스에 폭죽을 꽂아 불을 붙여 준다”고 했다.

 DJ가 강렬한 비트가 섞인 일렉트릭 음악을 내보내자 모두 박자에 맞춰 호루라기를 불며 춤을 췄다. 무대에서 처음 만난 여성의 손을 잡고 테이블로 데려오는 남성이 보였다. 이들은 잠시 대화를 나누다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는 “만난 지 얼마 된 게 뭐가 중요한가”라며 “클럽에선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벌어지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친 클러버가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둔 1층 화장실 입구. 주로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가끔씩 남성들이 와 말을 걸기도 했다. 여자 화장실 안은 완전 북새통이다. 발이 아파 하이힐을 벗고 밴드를 붙이는 사람, 화장을 고치는 사람, 친구와 함께 셀카를 찍는 사람, 휴대전화를 붙잡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 등이 가득했다. 남성 품평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오전 1시가 되자 1층 무대에서는 비보이 공연이 시작됐다. 매주 컨셉트를 정해 파티를 여는데 이날 주제는 스텝 업(Step Up)이었다. 10여 분간의 비보이 공연 후에는 이 클럽의 메인 DJ 팀 보너(Team Boner)가 등장했다. 디제잉(DJing·DJ가 음원을 재조합한 음악을 선곡하거나 설명을 붙이는 행위 등)은 2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가장 ‘핫’한 DJ는 클럽 분위기가 무르익는 1시~1시30분에 등장한다. 바로 지금이다.

  팀 보너의 디제잉에 맞춰 레이저 등 특수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의 음이 점점 높아지고 강해지더니 DJ가 두 팔을 쳐들자 천장에서 하얀 스모그가 소화기처럼 강하게 분사됐다. 클러버들은 모두 흡사 록페스티벌 관중처럼 더 열광하더니 DJ를 따라 두 팔을 쳐들고 뛰거나 과격하게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클럽 측에 따르면 이날 입장한 사람은 약 1500명이었다.

‘물’좋은 2층. 오전 2시~ 3시

무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VIP존 난간에는 여자들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모델처럼 늘씬했다. 클럽 관계자는 “1층과 (VIP존인) 2층은 ‘수질’ 차이가 있다”며 “1층이 지방이라면 2층은 강남, 다시 말해 마시는 것도, 옷차림도 다르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1층 여자들은 핫팬츠나 미니스커트에 달라붙는 티셔츠나 블라우스 차림이 많은데, 2층은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등보다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여자가 많았다.

 이런 수질 차이는 경제력 있는 VIP 손님의 선택권 때문이라는 게 클러버들의 설명이다. 한 여성 클러버는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뭔가 특별한 신분에 속한다는 우월감이 느껴진다”며 “그래서 클럽에서 남자들이 작업 걸어올 때는 2층에 갈 수 있는 VIP용 밴드를 차고 있는지부터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내가 먼저 ‘2층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물 반 고기 반, 그물만 던지면 걸려든다?!” 오전 3~5시

새벽 3시가 되자 사람이 빠져나간 게 눈으로도 보였다. 클럽 관계자는 “1차 정리시간대”라고 말했다. 집에 갈 사람 가고, 다른 데 갈 사람은 짝지어 나간다는 거다.

 그러나 클럽 안은 여전히 취흥으로 가득 찼다. 술 취한 사람도 확연하게 늘었다.

 이 시간은 무대에서 춤추는 대신 각자 자리에서 자기들만의 무대를 만들어 즐겼다.

 새벽 4시가 되자 클럽의 한 직원이 다가와 “이 시간이면 물 반 고기 반”이라며 “그물만 던지면 걸려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테이블에서는 남자 2명이 여자 5명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도 했다. “여기서 술 한잔 하라”는 말 한마디에 5명이 몰려든 거다. 남성이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하자 한 여성이 “다들 입만 열면 의사라네”라며 삐죽거렸다.

애프터 클럽으로 옮기는 시간? 오전 5시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20여 명이 몸을 흔들고 있었으나 숫자는 확연히 줄었다. 클럽 관계자는 “이제 애프터 클럽으로 이동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애프터클럽은 새벽 3~4시 이후, 클러버들이 2차로 가는 클럽을 말한다. 대개 오전 7~8시까지 운영한다. 강남에는 이런 애프터 클럽이 서너 곳 있다고 한다.

 출구로 나오자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클럽 정문 앞에는 남녀 커플이 많았다. 발레파킹한 차나 택시 등이 오면 남자들은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여자들을 부축한 채 차로 실어 날랐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클럽의 또 다른 얼굴
'작업' 목적인 사람도 많아 … 부모가 룸 예약해 유혹 차단하기도

클럽은 20·30대가 즐기는 대표적 유흥문화다. 강남의 대형 클럽엔 하루 3000여 명이 찾는다.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많은 딸들은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주말 밤 클럽행(行) 승낙을 받는다. 한 여대생은 "주로 파티 동아리 친구들과 춤추러 클럽에 다닌다”며 "하지만 과 친구 중 클러버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 여대생처럼 춤만 추러 클럽에 가는 건 아니다. 하룻밤 불장난이나 과감한 일탈을 기대하는 사람도 적잖다. 그래서 클럽 매니어들은 “정말 친구끼리 춤 추며 스트레스 풀 생각이라면 새벽 3시 전엔 집에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몸이 아플 때를 빼고는 매주 클럽에 다니는 김모(29·회사원)씨가 클럽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다. 그는 “클럽에 새벽 3~4시 넘어서까지 남아 있는 여자 중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며 “멀쩡한 정신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을 스킨십이나 노골적 유혹이 쉽게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여자친구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3시까지는 집에 도착하라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장이 아니다. 클럽에서 이성(여성)을 유혹하는 노하우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가 많다. 여기엔 ‘작업’에 성공한 남성이 ‘인증샷’으로 첨부한 후기를 올리기도 한다.

 마약이나 환각제를 파는 경우도 있다.

 클러버 최모(30·여)씨는 “약 파는 사람이 새벽 4시 무렵 슬쩍 다가와 ‘OO 주문하지 않았느냐’며 접근하기도 하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클럽 관계자들은 “절대 구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마약 연루자로 경찰서에 끌려갈 위험은 나중 문제다. “검증되지 않아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권하길래 마약인 줄도 모르고 엉겁결에 해봤다”며 “두통에다 구역질이 계속 나오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심하면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아예 부모가 클럽을 예약해주는 경우도 있다. 강남의 한 클럽의 경우 7, 8월 룸과 테이블 예약의 10%는 부모가 직접 한다. 이 시기는 유학생이 많이 돌아와서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클럽 직원을 알기 때문에 사실상 어느 정도 감시하에 놀게 해주는 거다. 미리 선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술도 너무 과하게 마시지 않는다.

 이런저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대형 클럽이 지방이나 소규모 클럽보다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강남의 한 클럽 관계자는 “대형 클럽은 질서를 유지하는 가드를 여러 명 배치하기 때문에 별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곳은 대개 소규모 클럽”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강남의 대표적 클럽인 옥타곤은 분위기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남자라도 상의를 탈의하면 즉시 퇴장시킨다고 한다.

 서울에서 클럽이 많이 몰린 곳은 강남 이외에 이태원과 홍대 앞이다. 클러버들은 홍대>강남>이태원 순으로 분위기가 과열된다고 말한다. 가격은 강남>이태원>홍대 순이다.

 윤세환(28·회사원)씨는 “홍대는 강남보다 싸기 때문에 20대 초중반 대학생이나 인근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가 많이 찾는다”며 “음악이 시끄럽고 무질서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남의 단정한 옷차림에 비해 모자·티셔츠·운동화 등 캐주얼한 복장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태원은 술값은 강남보다 저렴하지만 분위기는 더 정제된 곳이다. ‘글램’ 등 요즘 이태원에서 유행하는 라운지 클럽은 입장료나 DJ가 없다. 음악도 강렬한 비트의 일렉트로닉보다는 가볍게 몸을 흔들 수 있는 하우스 계열을 선곡한다. 클럽 내부도 다르다. 조명은 강남이나 홍대보다 밝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직장인이 많이 찾는 이유다.

글=윤경희·유성운 기자 , 박소현 인턴기자(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4년)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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