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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14명은 아인슈타인·모차르트 될 인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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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25면

모차르트 가족의 유럽 여행: 아버지, 누나와 함께(루이 카로지. 1763) [위키피디아]

2005년 8월 서울에서 아인슈타인의 뇌가 학업성적표, 연애편지,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 논문과 함께 전시되었다. 1955년 사망 직후 그의 뇌는 240개 조각으로 잘려 보관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서울에 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크기와 무게가 보통 사람의 것과 비슷했다. 영국 의학주간지 ‘랜싯(The Lancet)’의 1999년 6월 19일자 논문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신경학적으로 특이한 사항이 발견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 있다' <23> 천재의 실체

천재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9세기 후반에야 시작됐다. 심리학자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천재를 정의한다. 첫 번째는 천재를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자신이 속한 시대를 앞지르는 족적을 남긴 독보적인 존재’라는 정의다. 이에 따르면 천재란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처럼 과학과 예술 등 특정 분야에 철저히 몰두하고 독특한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해 놀라운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20세기 전반에 출현한 지능지수(IQ) 검사에서 140 이상을 획득한 사람들을 천재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인류 역사를 빛낸 천재 중 상당수는 IQ 검사가 생기기 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1926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콕스(1890~1984)는 이런 천재 301명의 지능지수를 추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표 참조>

아인슈타인의 세 살 적 모습(1882). [위키피디아]

물론 신빙성이 높은 자료라고 할 수 없겠지만 다빈치, 모차르트, 다윈, 베토벤의 지능지수가 괴테, 라이프니츠, 파스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코페르니쿠스, 루소, 렘브란트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천재의 기준인 140보다 낮은 지능지수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 결과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2006년 6월 미국의 심리학자인 앤더스 에릭슨이 펴낸 『전문지식과 전문가 수행에 관한 케임브리지 편람(Cambridge Handbook of Expertise and Expert Performance)』은 천재들이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천재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최초로 집대성한 이 918쪽짜리 책에 따르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들의 지능지수가 보통 사람들보다 약간 높은 115~130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지능지수는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한다. 지능지수로만 보면 100명 중 14명은 천재가 될 조건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반드시 지능지수가 월등히 높아야만 천재적인 업적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예컨대 1956년 트랜지스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는 지능지수가 140 미만이었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낸 천재로 알려진 리처드 파인만 역시 지능지수는 122에 불과했다.

“천재의 창조성은 후천적 학습 결과”
천재는 한마디로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천재들의 창조적인 능력에 대해 유전자와 관계가 있다고 믿는 선천론자들과 그 반대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험론자들 사이에 이른바 ‘본성 대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이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은 천재에 대해 과학적 연구를 최초로 시도한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이다. 1869년 펴낸 최초의 천재 연구 저서인 『유전하는 천재(Hereditary Genius)』에서 골턴은 탁월한 인물을 배출한 혈통에서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은 음악가들을 보면 천재성은 타고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의 천재로 맨 먼저 손꼽히는 모차르트는 네 살 적부터 연주를 시작해 여섯 살 때 미뉴에트를 작곡하고, 아홉 살에 교향곡, 열한 살에 오라토리오, 열두 살에 오페라를 썼다. 어디 그뿐이랴. 하이든은 여섯 살에, 멘델스존과 슈베르트는 아홉 살에, 베토벤은 열두 살에 첫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천재 연구자들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자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 양육 쪽의 손을 들어준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eugenics)이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한 유대인 대량 학살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됐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과학자들은 대부분 환경 결정론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 양육 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천재의 창조성은 후천적 학습의 결과라는 주장이 득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교육심리학자인 벤저민 블룸(1913~1999)의 ‘10년 규칙(10-year rule)’이다. 1985년 블룸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예술가, 운동선수 등 120명을 연구한 결과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간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령 올림픽 수영선수는 평균 15년,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도 15년 동안 엄청난 연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과학자, 수학자, 조각가 역시 예외 없이 최소한 10년 넘게 자기 분야에 몰두하고 기량을 갈고 닦은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규칙은 완벽한 천재로 손꼽히는 모차르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모차르트는 한 곡을 쓰면서 동시에 다른 곡을 생각해 낼 수 있었으며 악보에 옮기기 전 이미 곡 전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단숨에 작곡했다는 소문과 달리 그의 초고에는 고친 흔적이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도중에 포기한 작품도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 멜로디의 80% 정도가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 작품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초기 작품의 수준이 나중 작품보다 뛰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컨대 모차르트는 신동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 때문에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훼손될 수는 없다. 단지 인류 역사상 천재 중 천재로 여겨지는 모차르트조차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훌륭한 스승과 좋은 환경을 만나야
어려서는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도 한둘이 아니다. 2001년 1월 프랑스의 과학저술가인 로베르 클라르크가 펴낸 『천재들의 뇌(Super Cerveaux)』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말이 너무 늦어 가족들이 지진아가 아닌지 걱정할 정도였고, 다윈이나 톨스토이도 학교 성적이 시원찮았으며, 피카소는 글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열등생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17세에 음악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25세에 첫 작품을 작곡했고, 반 고흐는 27세에 처음 그림을 배웠으며, 고갱은 39세에야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늘그막에 대표작을 내놓은 대가들도 적지 않다. 하이든은 66세에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썼으며,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

에릭슨 역시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책에서 에릭슨은 천재가 1%의 영감, 70%의 땀,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으로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천재들은 보통 사람보다 다섯 배 정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꼽히는 모차르트조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했다는 사실은 35년의 짧은 생애에 무려 600여 편을 작곡했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대체로 천재들은 모차르트처럼 정력적인 일벌레여서 많은 작품을 생산했다. 프로이트는 45년간 330건, 아인슈타인은 50년간 248건의 논문을 남겼다. 볼테르는 2만1000통의 편지를 썼고 에디슨은 1093건의 특허권을 획득했다.

에릭슨은 “천재가 되려면 좋은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한 아버지의 열정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이 꽃필 수 있었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천재의 창조적 능력이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다. 창조성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딘 키스 사이먼턴은 2012년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11·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천재적 창조성 가운데 최소한 20%는 타고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람의 성격에 차이를 부여하는 요소의 하나인 ‘지적 개방성’, 즉 새로운 생각에 개방적일수록 창조적인 업적을 많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천재의 창조성은 유전적 자질과 환경적 요인이 잘 결합할 때 발현한다는 뜻이다. 천재는 피와 땀의 합작품인 것이다.

천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지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경우처럼 천재의 뇌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머리 안에는 없는 특별한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을뿐더러 천재나 보통 사람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천재와 보통 사람 사이의 지적 능력 차이는 질보다 양에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천재들은 일반인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모두에게 있는 것을 약간 더 많이 갖고 있을 따름인 셈이다. 요컨대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있는 일반적 능력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덕에 완전히 다른 두뇌의 소유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록 개인차는 있겠지만 천재들의 사고방식을 본뜰 수만 있다면 누구나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천재들 역시 훌륭한 스승의 사고방식을 배워서 재능을 발휘한 사례가 적지 않다. 1922년, 1938년에 각각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와 엔리코 페르미 모두 함께 연구한 제자들 중 여러 명이 노벨상의 영광을 함께 했다. 보어는 4명, 페르미는 6명의 문하생이 스승 덕분에 노벨상을 탔다.

우리 주변에서 미래의 모차르트와 아인슈타인이 좋은 스승과 환경을 만나지 못해 평범한 사람으로 사라지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9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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