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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안해요 어학연수 간 적 없죠, 그래도 만점 받는 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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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리즈 ‘1등의 책상’을 시작합니다. 이름 그대로 각 학교 전교 1등 집을 찾아 그 학생의 책상을 보여드립니다. 이를 통해 전교 1등이 쓰는 교재는 무엇인지, 또 평소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글=전민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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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10년 전쯤 유행했던 한 교육업체 광고 CM송이다. 서울교대부초 6학년 이민경양이 바로 그런 학생이다. 엄마한테 등 떠밀려 수학 선행학습을 하거나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많다는 교대부초에서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저희 아이는 특별한 공부법이 없는데 어쩌죠.”

 이양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기도 전에 엄마 이윤재(38·마포구 토정동)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보통 1등 하는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며 “민경이는 이런 애들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그저 겸손일까. 정작 송경헌 교대부초 교장은 “성적이 우수한 것은 물론 행동까지 모범적인 학생”이라며 이양을 추천했다.

이민경양

 사실 초등학교는 공식적으론 전교 1등이 없다.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지 않는 곳이 많을뿐더러 성적표에는 등수나 점수 대신 매우잘함·잘함·보통·노력요함 등 과목별 성취 수준만 표시하기 때문이다. 교대부초는 1학년 2학기부터 한 학기에 두 번씩 성취도평가를 치른다. 이양은 20번이 넘는 성취도평가에서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지금까지 틀린 개수를 모두 합해도 10개를 넘지 않는다. 특히 4학년 이후에는 국어·수학·사회·과학 모두 100점이었다.

 비결은 그가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양은 강남·서초에서 학교를 다니는 다른 학생과 비교할 때 세 가지가 없다. 수학 선행학습, 학원 ‘뺑뺑이’, 그리고 어학연수다. 수학은 방학 때마다 다음 학기 내용만 예습 삼아 문제집을 푼다. 수학 학원은 아예 다닌 적이 없다. 학업 관련 사교육은 주 2회 영어 과외가 전부다. 이마저도 토플·텝스 같은 인증시험 대비가 아니라 원서만 읽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영어 실력이 절로 늘어 굳이 어학연수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학원 경험은 지난 겨울방학 때 논술학원에서 4주간 역사 특강을 들었던 게 전부다. 초등학생 때 누구나 한다는 학습지조차 한 적이 없다.

 대신 예체능 관련 사교육은 많이 받았다. 일곱 살 때부터 지난해까지 노래를 배웠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이씨는 “예체능 교육은 아이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준 동시에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민경이가 1학년 때 바이올린을 배운 건 순전히 엄마 욕심이었다. 하지만 가르쳐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도·레·미 음을 내겠다면서 미·파·솔만 연주했다. 엄마는 더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이는 재미를 못 느꼈다. 하는 수 없이 1년 만에 그만뒀다.

 이씨는 “아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뜻만 강요한다고 따라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며 “뭘 배우든 스스로 즐거워해야 실력이 느는 걸 보니 예체능뿐 아니라 공부도 재미를 느껴 스스로 하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씨는 “학원은 학교 수업을 잘하기 위한 보조 역할인데 주객(主客)이 전도돼 학원 때문에 학교 수업이 재미없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대신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습관을 길러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항상 “선생님 얘기에 최대한 집중하라, 수업 시간 내에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다 배워 오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가 성적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학원 안 다니는 게 좋은 성적 받는 비결 아닌 비결”이라며 “학원을 안 다니니 시간이 많아 학교 과제를 충실히 할 수 있고, 학교 수업에도 집중한다”고 말했다. 민경이도 동의한다. 이양은 매일 아침 자습시간 30분 동안에 그날 배울 과목의 교과서를 읽는다. 이양은 “학원 숙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교과서를 읽으며 그날 어떤 내용을 배울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메모해 놓는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는 교사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양은 “아침에 교과서를 읽으면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 수업을 들으니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교재와 필기도구 등만 꺼내 놓은 깨끗한 책상.

 학교 수업과 함께 이씨가 강조하는 게 바른 자세다. 이양은 침대나 식탁에서는 공부하지 않는다. 침대방과 분리된 공부방의 책상 앞에서만 공부한다.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30분 이상 앉아있기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1시간 정도는 거뜬하다. 책상 위에는 그 시간에 공부할 교재만 꺼내놓는다. 잡생각이 나게 하는 물건은 책상에서 모두 치운다. 시간표나 계획표도 정신을 흐트러뜨린다는 이유로 하나도 안 붙여놨다. 책장은 책상에서 두 발자국 떨어진 벽면에 있다. “괜히 책 꺼내보고, 쓸데없이 계획표 수정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위험요소를 모두 없앤 셈이죠.”

 글씨도 또박또박 정성들여 쓰게 했다.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게 집중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림일기 쓸 때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글씨 쓰는 시간이 더 걸린 적도 많다. 특히 시험지에 답을 쓸 때 항상 또박또박 쓰게 연습시켰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이씨는 “민경이가 원래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 아닌데도 시험에서 실수가 거의 없는 걸 보면 이런 습관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글씨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양은 교재를 어떤 식으로 선택할까. 여러 권을 같이 두고 참고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양은 주요 과목별로 전과와 문제집(셀파 해법) 한 권이 전부다. 또 여러 번 대충 보기보다 한 번 볼 때 확실히 하는 편이다. 특히 수학은 틀리면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푼다. 사회·과학은 문제집 외에 추가로 『손에 잡히는 교과서』를 본다. 예를 들어 6학년 1학기 때 ‘우리 국토의 모습과 생활’이라는 단원을 배우면 『손에 잡히는 교과서』 지도·지형편을 미리 읽어보고, 과학 시간에 ‘전기’에 대해 배우면 전기편을 읽으며 배경 지식을 쌓는다.

 이양은 “교과서가 핵심 내용만 정리했다면 『손에 잡히는 교과서』는 좀 더 다양한 예시가 나와 있어서 재미있다”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할 때 항상 손 들고 대답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배경 지식 덕분”이라고 했다. 이양 책장에는 『수학여행 제이든 구출작전』『가우스의 수학노트』 『과학자와 놀자』 『사진과 연표로 보는 만화 교과서 세계사』 『한국사 편지』 등 교과서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책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렇게 똑 부러지게 공부 잘하는 이양의 교우관계는 어떨까. 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친구가 많다. 이씨는 “여자 애들은 대개 친한 몇몇하고만 붙어 다니는데 애 성격이 둥글둥글해서인지 남녀 가리지 않고 다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3, 4학년 때는 학급 회장, 5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을 했다.

 이런 ‘엄친딸’을 뒀지만 엄마는 그래도 불안하단다. “학교생활을 사교육보다 훨씬 우선에 둔다는 교육방식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통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하지만 초등학교 때 들인 습관은 분명 긍정적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교육에 충실하지 않은 우등생은 없거든요. 중학교 때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당연히 학원도 알아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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