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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해외칼럼

북한의 역설 …'약자의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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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북한 문제는 주된 의제의 하나였다. 의제는 새로울 게 없지만 분위기는 새로웠다. 지난 20년간 미국과 중국의 논의 결과를 보자.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혔지만 자국의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공동목표로 선언하는 것을 넘어서는 실질적 합의는 거의 이루지 못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제로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핵 이슈보다는 북한의 붕괴가 가져올 국경의 혼란을 더욱 우려한다. 난민의 유입뿐 아니라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중국은 김씨 왕조의 보존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이에 따라 역설적 현상이 생겨났다. 북한이 중국에 대해 놀라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한 것이다. 북한은 필자가 이름 붙인 ‘약자(弱者)의 권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협상 상황에서는 자신이 약자이며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은행에 10억 달러를 빚진 경우 당신은 상당한 협상력을 지닐 수 있다. 중국은 이런 의미에서 은행가에 해당한다.

 과거 한 중국 관리는 내게 “북한은 우리의 외교 정책을 납치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북한은 자신의 약한 패를 대담하게 사용해 자신의 힘을 더욱 키웠다. 전면전이 발생하면 한국군과 미군이 승리하리란 것을 북한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불과 48㎞ 떨어진 비무장지대에 1만5000문의 대포를 배치한 북한은 자신들이 남한 경제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모험을 벌일 용의가 있음을 노련하게 과시해 왔다. 2010년 한국 해군 군함을 침몰시키는가 하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올봄엔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서도 호전적 수사들을 쏟아냈다. 이제는 중국이 인내심을 잃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에 대한 신뢰는 그의 아버지 때보다 작다. 중국 지도자들은 또한 북한이 자국에 가하고 있는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핵실험이 계속되면 한국과 일본에서 핵무장 요구가 생길 것이다. 또한 2010년 같은 군사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 한국이 강력 대응에 나서고 여기에 중국이 끌려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시 주석은 북한 문제에 대해 오바마와 ‘솔직한’ 논의를 한 뒤 동맹국인 북한을 제쳐놓고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했다. 그 직후 북한 고위 관료 2명이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북한이 벌여온 행태에 대한 비난을 받았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2005년의 다자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6자회담의 재개도 촉구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의 말과 행동은 온건해졌지만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게 중국이 처한 딜레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과 한국은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자신들이 그 상황을 이용해 군대를 북·중 국경으로 이동시키지 않겠다고 중국을 안심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거 미국이 북한의 붕괴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비공개 회담을 제안했을 때 중국은 북한을 자극하고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돌발 사태를 논의할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 진퇴양난을 벗어나려는 중국의 다음 행보가 될 수 있다. ⓒProject Syndicate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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