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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히스패닉 교회 '아름다운 통합'

미주중앙

입력

인종과 문화는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는 얼마든지 한 몸이 될 수 있다. 오는 14일 한인 회중들로 구성된 쉴만한 물가 교회가 히스패닉 교회인 생명의 길(camino de vida) 교회와 통합한다. 7일 주일 예배 후 전건국 목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두 교회 성도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쉴만한 물가 교회 제공]
쉴만한 물가 교회와 생명의 길 교회 교인들의 모습. 김상진 기자

히스패닉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LA지역 로레나 스트리트 선상에는 유일한 한인교회 하나가 있다. ‘쉴만한 물가 교회(담임목사 전건국)’. 어른과 아이들을 합쳐 60여 명의 한인들이 출석중인 이곳은 작은 동네 교회다. 오는 14일은 동네교회인 이곳이 진정한 동네교회가 되는 날이다. 쉴만한 물가 교회가 히스패닉 교회인 ‘생명의 길(camino de vida·담임목사 훌리아 알리그레아)’ 교회와 통합을 하는 날이여서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가 됐을까. 히스패닉 동네에서 유일한 한인교회가 진짜 이웃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엔 이방인 같았다"

쉴만한 물가 교회는 소위 '셋방살이'를 오래했다.

어떤 해는 이사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전전긍긍하며 LA 지역을 옮겨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매번 몇 안되는 교인들끼리 이삿짐을 싸고 풀었던 터라 미자립 교회의 아픔과 설움을 잘 안다.

그랬던 교회가 종잣돈을 겨우 마련해 '내집 마련'을 하며 현재 로레나 스트리트 선상에 자리 잡은 것은 지난 2008년의 일이다. 193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에 주차장도 없는 곳이지만 과거 히스패닉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작은 동네교회였다. 물론 떠돌이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기쁨은 컸지만 항상 부담감이 공존했다.

이 교회 조동현 장로는 "히스패닉 주민이 90%가 넘는 곳에 한인교회가 들어서니 항상 손님 또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며 "선교적 교회의 사명을 갖고 있었는데 먼저 가장 가까운 지역 사회와 융화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동네는 생활 선교지

쉴만한 물가 교회는 로레나 스트리트 지역의 히스패닉 동네가 '작은 선교지'라고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시작된 사역이 '거라지 세일'.

두 달에 한 번씩 온 교인이 나서 교회 앞에서 벌이는 '거라지 세일'은 이제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이 됐다. 교인과 주민, 주민과 주민 사이의 얼굴을 서로 익혀가고 이름까지 외워가며 친밀함이 자연스레 쌓여갔다. 수익금은 얼마 되지 않아도 수년간 꾸준히 해왔던 거라지 세일은 주민들과 가장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어느덧 거라지 세일을 할 때면 주민들이 먹을 것까지 서로 나누는 동네 잔치가 됐다.

이 교회 전건국 목사는 "우리 교회가 이 동네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며 "우리 교회는 남미 출신 교포들도 많아서 파라과이 등 남미 선교에 주력해왔는데 거기에 딱 맞게 교회 위치도 히스패닉 동네로 하나님이 인도해주셨다"고 전했다.

쉴만한 물가 교회는 이 교회를 개척(2002년)했던 이희수 1대 담임목사의 비전을 토대로 남미선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파라과이 지역에 교회를 2개나 설립하면서 지난 2009년 이희수 목사를 파라과이 선교사로 파송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이 교회 부교역자 출신으로 2대 담임을 맡았다.

이런 쉴만한 물가 교회에게 히스패닉 동네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생활 선교지인 셈이다.

◆"건물주 아닌 동역자 원했다"

쉴만한 물가 교회는 지역 사회를 품기 위한 또다른 길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인근 지역의 히스패닉 교회들이 건물 렌트에 대한 요청을 해왔다. 교회 입장에서는 히스패닉 교회에 렌트를 주면 매달 내는 융자금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당회와 교인들은 그 기회를 잡지 않고 이 시대의 진정한 교회간의 '하나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셋방살이'를 해봤기 때문에 미자립교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어서다.

조 장로는 "실리적으로 생각해서 처음에는 렌트를 줄까 했지만 교회와 교회가 서로 건물주와 세입자 관계가 된다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며 "그래서 렌트비를 받지 않아도 한인 교회와 히스패닉 교회가 서로 동역하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교회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때 만나게 된 히스패닉 교회가 바로 '생명의 길 교회(camino de vida)'였다. 교인이 겨우 15명인 미자립교회였다.

전 목사는 "우리 교회도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사실 렌트를 주면 여러가지로 이익이 있었다"며 "하지만 장로님들과 교인 모두가 이 시대에 어려운 교회에게 우리가 한가족이 되어주자는 의견을 모아주셔서 그런 결정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한지붕 두가족이 하나로…

올해 초부터 다른 문화의 두 교회가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적응하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달랐지만 식당도 같이 쓰고, 시간 구분 없이 모든 시설을 함께 공유했다. 가끔씩 야외예배를 함께 드리며 음식을 나누고 교제의 시간도 가졌다. 매주 토요일은 새벽기도도 같이 했다. 쉴만한 물가 교회가 하는 거라지 세일에도 함께 동참하며 두 교회는 점점 하나되기 시작했다.

전 목사는 "어느날 '생명의 길' 교회에 조심스레 차라리 '한 교회'가 되는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다"며 "그리고 나서 2주 정도 서로 교회가 기도의 시간을 가진 뒤 하나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 이름은 히스패닉 교회인 '생명의 길 교회'에서 먼저 '쉴만한 물가 교회'를 그대로 사용하자고 제의했다. 15년간 사용했던 교회 이름(생명의 길)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훌리아 알리그레아 목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는데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라며 "지금까지 우리가 '생명의 길'로 달려왔으니, 이제 도달한 곳이 '쉴만한 물가'로 생각하려 한다"고 전했다.

◆항상 뒷문 열어놓는 교회

두 교회의 통합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 15명의 히스패닉 성도들의 열정과 겸손함에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본다는 게 한인 교인들의 전언이다.

조 장로는 "우리 교회 뒷문이 한 길가로 그대로 연결되는데 히스패닉 성도들은 언제든지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교회로 들어올 수 있게 모든 문을 열어놓고 예배를 드리더라"며 "매일 동네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교회 청소를 모두 도맡아 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교회가 요즘 잃어버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 통합은 오히려 우리가 복을 받은 것 같다"고 웃었다.

오는 14일 두 교회의 통합 예배는 쉴만한 물가 교회의 창립 11주년 감사예배와 함께 열린다. 앞으로 한국어 예배, 스패니시 예배, 영어예배가 실시되고 한인과 히스패닉 회중은 수요예배와 토요 새벽기도를 함께 하게 된다. 훌리아 목사도 함께 남아 그대로 동역하게 된다.

전 목사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이미 수개월간 함께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가족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것을 보여줬다"며 "히스패닉 동네에서 하나됨을 통해 진짜 허물없는 동네교회가 되어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모이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네이션 해주세요.”

거창한 통합이 아니다. 합쳐도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교회의 연합이다.

헌금이 느는 것도 아니고, 딱히 교회 시설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도 없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서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진 못했지만 서로에겐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쁨만큼은 크다. 가족이 느는만큼 살림은 필요해졌다. 현재 쉴만한 물가 교회는 기부를 받고 있다.

전 목사는 “우리는 파워포인트도, 마이크, 음향시설, 악기도 없이 기타 하나로 예배를 드린다”며 “혹시 각 교회에서 못쓰는 물건이나 창고에 쌓아둔 안쓰는 것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네이션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의자, 테이블, 기타, 스피커 등 기부에는 제한이 없다. 안쓰는 물건은 미자립교회에게는 얼마든지 귀한 살림이 될 수 있다. "망가진 건 고쳐쓰면 됩니다."

▶문의: (213) 568-5791

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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