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로서 대기업 총수와 정치인, 고위 공직자를 벌벌 떨게 했다. 하지만 9일에는 푸른색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뇌물 검사’로도 불린다. 백발 머리에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선고를 기다리는 그에게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 조직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이정석)는 이날 김광준(53·사진) 전 서울고검 검사(부장검사)에게 징역 7년에 벌금 4000만원, 추징금 3억8000여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때인 2008~2009년 ▶유진그룹 유순태(47) 부사장으로부터 술·골프접대 및 5000만원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6)씨의 측근이자 자신의 고교 동창인 강모(52)씨로부터 2억7000만원 ▶KTF 홍보실장과 함께 간 홍콩·마카오 여행 경비 667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또 대구지검 포항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던 2005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포항지역 철강업체 대표 이모씨로부터 내사·수사 무마 등의 청탁과 함께 5400만원을 받은 부분도 유죄로 인정했다. 총 3억 8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유 부사장으로부터 5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그는 유경선(58) 유진그룹 회장 형제와 조씨 측근 등으로부터 10억367만원의 금품·향응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구속기소됐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유 부사장에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유 회장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해 재판부는 “비리 척결에 앞장서는 검찰의 핵심 간부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언제든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대기업 총수와 사건 관계자를 만났다”며 “특히 거액의 금품·향응을 받아 죄가 무겁다”고 밝혔다. 선고가 끝나자 김 전 부장검사는 피고인석에 있던 유 회장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어 “고생하셨다”고 말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김 전 부장검사의 뇌물 액수는 역대 비리 검사 중 최대 규모다. ‘그랜저 검사’ 정모(54)씨는 2008~2009년 현금·그랜저 승용차 등 4600여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기소돼 징역 2년6월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벤츠 여검사’ 이모(38)씨는 2010~2011년 현직 변호사로부터 샤넬 핸드백, 벤츠 승용차 등 55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돼 1심 유죄, 2심 무죄 선고를 받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구성된 특임검사팀(특임검사 김수창)의 수사 도중 ‘검란(檢亂)’이 벌어졌다. 당시 한상대(54) 검찰총장이 김 전 부장검사와 언론 대응방안 등에 대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최재경(51)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일선 검사들이 집단 항명하면서였다. 한 전 검찰총장은 수사 결과 발표 직전 사퇴했고, 정치권이 검찰 개혁 대상 1순위로 꼽았던 대검 중수부는 지난 4월 공식 폐지됐다.
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