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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썰전 (舌戰) ⑥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문제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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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악역을 자처한 여교사(고현정·오른쪽)와 그에 맞서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 김새론(왼쪽) 등 아역들의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 교사의 진심이 드러나고 있으나 방영 초반에 실망한 시청자들을 돌려세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진 MBC]

일본 드라마(일드) 리메이크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주요 콘텐트로 이용되는 모양새다. 일드 특유의 섬세한 구성과 사회적 발언 등이 매력적이다. 페이스북 ‘드라마의 모든 것’팀이 진행하는 ‘드라마썰전’ 6회에서는 최근의 일드 열풍을 진단한다. 큰 기대를 모았던 MBC ‘여왕의 교실’을 중심으로 리메이크의 성공 조건과 한계를 짚어봤다.

“폭력적 교육 상황 너무나 작위적”

  ‘여왕의 교실’은 원작의 화제성, 교육문제라는 소재, 고현정 3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8회가 방송된 지금까지 성적은 기대 이하다. 시청률도 경쟁작인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4일 시청률은 9.5%. 수목드라마 1위에 오른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19.7%였다.

 드라마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 냉혹한 현실을 미리 체험하게 해 면역력을 갖게 해주려는 여교사(고현정)가 악역을 자처한다는 이야기다. 성적만능주의, 체벌과 차별, 왕따와 편가르기 조장 등 교사가 나서서 악행을 일삼지만, 알고 보니 참스승이라는 ‘반전’을 감춰놓고 있다.

 문제는 교사에 맞서는 아이들의 반란이 시작되고, 교사의 교육관이 드러나기 전까지 여교사의 악행이 시청자의 공감을 사기는커녕 ‘아동폭력’이라는 비판까지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주제가 뭐든 극중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참아내기 힘들다”(박지영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사),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작위적 설정, 분노 없이 보기 힘든 드라마”(허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라는 반응이 많았다.

  드라마에서 교사의 독설은 상상 이상이다. “너희들 중에 커서 행복해질 사람은 1%밖에 안 된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방해 안되게 일년 내내 당번이나 해라” 등등.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상처와 사생활도 까발린다. 아이들도 그 못지 않은 행동을 한다.

  일본에서도 방영 당시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독특한 연출과 연기로 ‘사회현실을 응축한 교실’을 그려낸 우화로 받아들여졌다. 강한 일본인을 길러내는 강한 교육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향수도 한몫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이다. ‘여왕의 교실’은 대사와 세트까지 곧이곧대로 베끼는 수준에 그쳤다. 문제는 일본색을 걷어내는 대신 ‘장면 대 장면’ 옮기기를 택했다는 점이다. 한국적 재해석, 한국화의 실패다.

 일드는 ‘비현실적 우화’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여교사를 판타지물에나 등장하는 마녀처럼 묘사했다. “교사의 전형을 벗어난 외양과 대사톤”(김지연 제작PD)에, 등장할 때마다 암운이 드리워졌다. 반면 우리 드라마는 밝고 화사한 화면에, “나무인형 같이 비현실적인 일드의 여교사와 달리 고현정은 피와 살이 느껴지는 현실의 인물로 보여져, 드라마가 우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홍석경 서울대 교수)

 일드가 매회 오프닝에 ‘악마 같은 교사에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1년간의 기록’이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복선을 깔아놓았지만, 우리 드라마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이런 복선 없이, 고현정이 중심인물인 것처럼 마케팅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고현정은 동화하기 어려운 인물이니, 시청자는 누구에 이입해 이 드라마를 왜 봐야 하는지 혼돈에 처했다.”(김주옥 템플대 박사과정)

MBC ‘여왕의 교실’ 반면교사로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오른쪽). [사진 KBS]

  일드 리메이크는 2000년대 꾸준했지만 최근 급증했다. 신규 채널 등장, 드라마 편성 증가, 과열된 경쟁 속에서 시청률이 검증된 안전한 원작을 확보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지난해 5편, 올해 3편의 일드 리메이크가 선보였다<표 참조>. 하반기에도 일본식 엽기코드를 내세운 ‘가정부 미타’와 ‘1리터의 눈물’이 각각 SBS, MBC에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스토리텔링, 상대적으로 문화적 차이가 적다는 점이 일드 리메이크의 매력적 요소다. 그러나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얀거탑’ ‘공부의 신’ ‘꽃보다 남자’ 등이 성공 케이스로 꼽혔다. KBS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이라는 소재 자체의 힘으로 주목받았으나 후반부 삽입된 로맨스 코드가 군더더기였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화사한 영상과 감정 라인의 극대화에 성공했지만, 원작 팬들의 평가는 박했다.

 3월 KBS ‘드라마스페셜’을 통해 방송된 4부작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일드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2011, 후지TV)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손병우 충남대 교수는 “ 리메이크의 성공사례로 볼 수 있을 만큼 유사하다. 단 한국적 재해석이 돋보였다. 각색의 구성력과 완성도가 빼어나다”고 평했다.

 한국 드라마가 로맨스와 비주얼에 강하다면 일드는 사회성과 리얼리티가 흥행 코드다. “ 과연 한국상황에 맞는 원작인지 판별해야 할 것”(김지연)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굳이 일본색이 짙은 ‘여왕의 교실’을 들여올 필요가 있었는지 회의적”(김주옥)이란 평마저 나왔다.

정리=양성희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MBC ‘여왕의 교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소품, 배경, 얼굴표정까지 그대로 복사하니 리메이크인지 재연인지 구분 안 가는.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설정이나 전개의 낮은 리얼리티. 아역들의 연기는 칭찬거리.

★★☆(김지연 프리랜서 제작PD):고현정의 인지도와 원작의 명성. 하지만 단순 베끼기에 머문 안타까움.

최근 리메이크 된 일본 드라마

<2012년>

▶ 아름다운 그대에게(SBS)=설리·민호 주연. 원작 후지TV ‘아름다운 그대에게’. 꽃미남으로 가득한 남학교에 남장을 하고 편입한 여고생의 로맨스.

▶ 닥터 진(MBC)=송승헌·박민영 주연. 원작 TBS’진’. 과거로 간 의사가 최고의 의술을 펼치는 타임슬립 의학드라마.

▶ 프로포즈 대작전(TV조선)=유승호·박은빈 주연. 원작 후지TV ‘프로포즈 대작전’. 타임슬립 로맨스물.

▶ 러브 어게인(JTBC)=김지수·류정한 주연. 원작 아사히TV ‘동창회-러브 어게인 증후군’. 30년 만의 동창회로 재회한 중년남녀의 로맨스.

▶ 친애하는 당신에게(JTBC)=김민준·박솔미 주연. 원작 후지TV ‘친애하는 당신에게’. 결혼3년차 연상녀-연하남 커플에게 과거의 연인이 찾아오다.

<2013년>

▶ 그 겨울 바람이 분다(SBS)=조인성·송혜교 주연. 원작 TBS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 눈이 먼 재벌 상속녀를 찾아온 가짜 오빠와의 로맨스.

▶ 직장의 신(KBS)=김혜수·오지호 주연. 원작 NTV ‘파견의 품격-만능사원 오오마에’. 비정규직의 애환을 코믹터치로 그림.

▶ 여왕의 교실(MBC)=고현정·김향기 주연. 원작 NTV ‘여왕의 교실’. 아이들에게 냉혹한 사회현실을 가르쳐주기 위해 악마를 자처한 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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