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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체형 이상 발달 땐 질병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건강의 지표가 점차 삶의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아이들의 체형이나 몸무게·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춘기 현상이 정상 시기보다 이르게 나타나는 ‘성조숙증’도 마찬가지다. 성조숙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과거와는 달리 질병의 하나로 여기는 부모가 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주부 김혜련(41)씨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 수영복을 사입히려다 무척 당황했다. 딸이 어려서부터 먹성이 좋았던 탓에 몸 전체적으로 살이 오르는 것을 보고도 그저 귀엽게만 넘긴 김씨였다. 어느새 딸의 가슴 부분이 봉긋하게 솟아올라 몽우리가 잡혀 있는 것을 보고 성조숙증을 의심했다. 집안일에 회사일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김씨는 딸의 성조숙증을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가 소아비만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발레를 전공하는 중학교 2학년인 딸을 둔 박성희(49)씨도 자녀의 성조숙증을 우려하는 중이다. 딸이 어릴 때부터 다이어트를 시키며 체중 조절을 오래 한 결과 현재 키는 150㎝, 체중은 37㎏이 됐다. 문제는 최근 2년 동안 키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초경을 하지 않았으니 성장판이 닫힐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은근히 걱정이다.

일찍 열린 성장판 일찍 닫힐 수 있어

 성조숙증으로 인해 사춘기 시기에 영향을 받게 되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우선 키 성장에 방해가 된다. 어린 시절의 신체 발육이 빨라 또래보다 키가 크고 정신적으로 조숙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분비된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성장판이 일찍 닫혀버려 최종 성인 키는 정상적인 사춘기를 보낸 또래보다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사춘기가 오면 정서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몸은 어른인데 정신연령은 아직 아이에 머무르다 보니 공격적인 성향이 커지고 성격장애로 이어지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져 학교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학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소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은 성조숙증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질 수 있다. 조기 생리로 인해 친구들의 놀림 대상이 되거나 왕따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른 나이에 생리를 하게 되면 생식기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심한 생리통이나 생리불순을 겪고 심한 경우 조기 폐경에 이를 수도 있어 더욱 주의가 요망된다. 서정한의원 박기원 원장은 “현재 자녀가 또래 평균 키 이상이어도 성조숙증일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치료와는 상관없이 성장 정밀검사를 받도록 권장한다”며 “여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비만, 극심한 다이어트 주의해야

 성조숙증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보통 성조숙증은 동물성 지방 같은 영양분 과잉섭취와 운동 부족으로 인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비만아이들은 성조숙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몸 속 지방이 성호르몬을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지방률이 증가하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는 렙틴이 많아져 초경이나 변성기 같은 사춘기 증상이 일찍 찾아오도록 만들 뿐 아니라 성장호르몬에 대한 호르몬 내성이 증가해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조숙증에 걸린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평균 키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 초경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성장에 대해 안심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극심한 다이어트를 오랜 시간 하게 되면 몸 속에서 성호르몬이 분비돼 성장판이 닫혀가지만 겉으로는 2차 성징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성장에 중요한 것은 초경시기 여부가 아닌 성장판과 뼈 나이다. 정확한 성장 정밀검사를 통해 아이의 뼈 나이를 체크하는 방법이 있다.

 환경호르몬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이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쓰는 샴푸의 성분을 보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함유돼 있는 경우가 있다. 이를 모르고 어린이들이 지속적으로 샴푸를 썼다면 경피로 에스트로겐이 흡수돼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만일 성조숙증으로 판명이 됐다면 그 원인과 성별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게 된다. 한의학적으로는 몸에 무리 없이 성호르몬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는 의이인·산약·인진 등의 약재를 이용한 한약처방을 기본으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한다. 비만으로 인한 성조숙증이라면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하는데 성인형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골량이 빠져 나가 오히려 키가 안 자랄 수 있으므로 성조숙증에 관련된 어린이형 성장기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좋다.

 키 성장은 때가 있는 법이다. 아이가 평균키 이상이 되더라도 성조숙증일 경우가 있으므로 치료와는 상관없이 성장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고, 검사 결과를 통해 아이의 초경과 변성기 시기를 예측함으로써 성장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 원장은 “아이의 키가 또래보다 유난히 크다면 뼈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앞서가고 있는 건 아닌지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일러스트="심수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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