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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을 삼각관계 연인에 빗댄 작품 1등 영예

중앙일보

입력

중국 상하이 푸단(複旦)대 한국인 유학생 한수정(19). 중국인 동급생 장샤오레이(張曉磊·20)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고백할 용기가 없다. 수정·샤오레이와 같은 동아리의 일본인 교환학생인 데지마 고키(手島幸輝·20)는 수정에게 반했지만 역시 말을 못하는 상태. 데지마는 수정 주변을 서성대지만 수정은 귀찮을 따름이다. 귀국을 앞둔 데지마는 진심을 담은 편지를 수정에게 건네고, 그의 마음을 안 수정은 오해를 풀고 미소로 화답한다.

한·중·일 젊은이들이 합작한 단편영화 ‘러브 인 상하이’의 줄거리다. 등장인물들은 실제 푸단대에서 만난 학생들. 이름도 실명을 썼다. 푸단대 동문들인 옌이핑(閻一平·21)이 각본·감독을, 요시나가 모모에(吉永百慧·20)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이들은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대학생 비디오·멀티미디어 결선대회’에서 41개의 경쟁 팀을 제치고 1등과 상금 3000달러(약 342만원)를 차지했다. “한·중·일 하면 떠오르는 영토분쟁·역사문제 대신 누구에게나 통하는 사랑 얘기를 다루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소통의 물꼬를 트면 갈등도 풀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옌이핑)

왜 하필 삼각관계일까. “주인공들이 괴로운 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중·일도 그렇지 않겠나. 데지마가 용기를 내 마음을 전달하자 진심이 통한 것처럼 한·중·일도 진정으로 소통하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장샤오레이)

이 대회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3국 젊은이들의 소통을 위해 올해 처음 열었다. “3국 대학생들이 한 팀을 구성해 작품을 내야 한다”는 조건만 내걸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두 달 동안 한·중·일 3국에서 치러진 예선에 42개 팀이 응모했다. 결선대회장에선 중국인 참가자가 한국어로, 한국인 참가자가 일본어로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 화합’도 연출됐다.

대회에서 2등은 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과 도쿄조형대학 연합팀의 ‘젓가락 행진곡’, 3등은 연세대팀의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각각 주어졌다. ‘젓가락 행진곡’은 한·중·일이 모두 젓가락을 쓰면서도 모양과 사용법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작품. 제작진 리더인 니헤이 히로토(仁平裕人·21)는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인데 각자의 잣대로 상대방을 재단하니 오해가 생긴다는 메시지를 젓가락이란 소재가 잘 보여 준다고 여겨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인들 일부의 발언과 일본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는 점도 알아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팀의 이현정(29)씨는 “한·중·일은 젓가락 문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아시아인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중·일 참가자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점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푸단대 팀의 옌이핑은 “미안해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고키가 자꾸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여러 번 NG를 냈다. 물어보니 일본에선 미안하다고 할 때 고개를 같이 숙이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의 신봉길 사무총장은 “3국 젊은이들이 출품한 작품들에선 역사문제나 영토갈등을 뛰어넘어 미래를 향해 협력해 가자는 전향적 의식이 느껴졌다”며 “앞으로 이 대회를 칸영화제처럼 권위 있는 영상축제로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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